움직이게 해 볼게

by 김동휘

"기다려 봐."


"언제까지? 이제 진짜 가야 돼. 두시야."


"아니.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내가 쟤 치워줄테니까."


"어떻게? 뭔 소리야."


질문과 함께 그는 뒤를 돌아봤다. 실내를 가득 메운 연기와 끊임 없이 움직이는 원색 조명들. 그 사이를 지나 강민의 시야가 도착한 곳에서는 정말로 파마 머리의 여자가 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강민의 눈에 계속 들어오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을 방해하는 여자가.


"뭐야. 화장실 갔나?"


"내가 보낸 거야."


"뭔 개소리야. 아까부터."


"일단 가 봐. 금방 돌아와."


그가 귀찮다는 듯이 그녀 쪽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리고 강민은 그 말대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저기요."


"네?"


"잠깐 앉아도 돼요?"


강민의 눈에 들어온 그녀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대화를 시작할 수는 있겠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초반의 어색함을 잊고 좀 더 신나서 떠들 수 있도록 만드는 그런 종류의 표정.


강민은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고 일어날 수 있었다. 강민이 그녀의 앞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파마머리의 그녀가 원래 자신이 앉아 있던 강민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번호 땄어."


"어. 그건 니가 한 거야."


"니가 한 건 뭔데?"


"움직이게 해 줬잖아. 파마한 걔."


"뭔 소리야. 그냥 화장실 간 거잖아."


"내가 보낸 거라니까."


"왜 그래 너? 뭔 소리야. 진짜."


"그런 게 있어."


"그럼 쟤도 화장실 가게 해 봐."


강민이 맞은 편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핑크색으로 염색한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싫어. 피곤해."


"피곤은 무슨. 갑자기 뭔. 해리 포터냐?"


"고마운 줄이나 알아."


"쟤도 화장실 가게 하면 오늘 나온 건 다 내가 산다."


"화장실 말고 그럼. 삼십 초 안에 우리쪽 보게 해 볼게."


강민은 잠시 핑크 머리 여자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강민이 기억하기로는 그가 이 곳에 앉아 있던 두 시간 가량의 시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케이. 해 봐."


그는 고개를 돌려 핑크 머리 여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강민도 마찬가지로 그쪽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십 초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들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폰을 잡았다.


강민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와. 잠깐만. 뭐야? 아니 진짜로. 뭐야 이거?"


"이제 가자."


그가 폰을 들고 일어날 준비를 하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한 건데?"


"가자. 늦었어."


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두어 번 흔들며 말했다.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일 때 강민이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건 지난 5년 간의 경험으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민은 '초능력' '뒤돌아보게 하기' '텔레파시' 같은 것들을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이미 막연히 예상했던대로, 납득 가는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쯤엔 강민의 머릿 속엔 오늘 전화번호를 받은 여자에 대한 생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마 다음에 그를 만날 때는 오늘 일은 없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그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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