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을 몰라

by 김동휘

"그냥 냅둬요!"


"아.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세요."


강민이 지프차 트렁크에서 밧줄을 꺼내려던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기서는 여기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세요. 어차피 강민씨가 나선다고 바뀌는 일도 없어요. 잠깐은 몰라도 결국은 정해진대로 되게 돼있으니까."


"저러고 있으면 몸 상할 것 같은데. 겨울인데 저기 그냥 둬요?"


강민이 원시인 한 명이 빠져 있는 깊이 3m정도의 구덩이 쪽을 보며 말했다.


"그거 강민씨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강민씨 역할이 아니라고요. 저기서 저 사람이 알아서 나오든. 누가 꺼내주든 그건 그 사람들이 할 일이지, 아무 상관 없는 강민씨가 할 일이 아니라고요. 여기서는 작은 친절. 상식적인 선의 같은 건 없어요. 착할거면 아예 예수처럼 착해야 되고. 누구한테 친절할거면 아예 끝까지 그 사람을 책임져야 돼요. 여기선 그게 상식이고 당연한 거라고요. 강민씨 같은 외부인이 자꾸 뭘 하려고 하면 여기 사람들만 피곤하게 하는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냥 저 사람 꺼내주고, 우리는 우리 갈 길 가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원시인 한 명이 구호소까지 걸어오지도 못할 만큼 앓고 있길래 제가 직접 그 사람을 업고 구호소로 데려와서 주사 놓고, 나을 때까지 케어한 적 있어요. 당연히 고마워할 줄 알았죠. 뭐 보답을 바란 건 아니지만 적어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나한테 자기는 이제 갈 곳이 없으니 잘 곳을 내놓아라. 먹을 것도 갖다줘라. 가관이더라고요.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내가 자기를 챙겨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결국 화를 냈죠. '내가 너를 구해줬는데 고마워는 못할 망정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냐.' 근데 이 원시인이 당황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당신이 나를 구했으니 이제 당신이 나를 책임져야 한다.' 고 말하더라고요. 그때는 어이가 없었죠.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기는 원래 그래요. 누군가 뭘 해주면, 고마워하고 보답하는 게 아니라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이 그 정도는 해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게 당연시 돼요. 과일을 주면 다음에 과일 정도는 당연히 줄 걸로 생각하고. 목숨을 구해주면 자기 목숨은 이 사람이 책임지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아무튼 내가 그 원시인한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했더니, 오히려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보더라고요. 저기 구덩이에 빠진 사람도. 저정도로 사람 죽을 일도 없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테니까 그냥 내비 둡시다. 강민씨가 여기 오래 있을 거면, 직접 경험해보고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지금 다음 주까지 정리해서 바로 가야 되잖아요. 근데 걱정이네. 아직도 이런 것도 모르면서 원시 사회 보고서를 쓰시나."


"아니. 듣고 보니까 그렇네. 저도 좀 느끼긴 했거든요. 사람들이 고마워하질 않아. 그래서 나는 텃세 부리는 건가 했죠. 근데 아예 그런 문화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런 문화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게 본성이라고 봐요. 가족끼리는 그렇잖아요. 고마워하나요 뭘. 그냥 해주면 해주는 거구나 하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근데 도시에서 그게 되나. 오늘 본 사람 내일 다시 볼 지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데. 적당히 '감사합니다' 하고. 받은 만큼 돌려주고 하면서 선 긋고 사는 거지."


"그럼 그냥 밧줄만 나무에 한 쪽 묶어서 구덩이에 던져 주고 바로 출발해 버리죠. 누가 줬는지도 모르게."


"저 사람이 저기 왜 저러고 있는지는 몰라도. 저럴만 하니까 저러고 있겠죠. 남들 안 다니는 위험한 길을 다닐 수도 있고. 누구랑 사이가 틀어져서 함정에 빠진 걸 수도 있고. 아무튼 자기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고생으로 느껴보면 다음엔 뭔가 달라지겠죠. 저기 좀 들어가 있다고 죽을 일도 없으니까. 강민씨가 애매하게 연민이나 정의감으로 행동하는게 저 사람한테도 좋을 게 없고. 강민씨한테도 좋을 게 없고. 이 원시 사회 전체에도 좋을 게 없다니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심지어 강민씨는 다음 주면 떠날 사람인데. 결과를 책임지지도 못할 일들을 벌려 놓고 가는 모양새가 되버리죠. 그냥 그 마음만 간직해 둬요. 마음가는대로 무작정 나서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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