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아

by 김동휘

"사랑해."


라고 말한 순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마음 속에 있던 사랑의 싹까지 몸 밖으로 나가버린 듯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알 수 없는 끌림과 두려움을 주던 그녀에게서는 갑자기 불결함이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은 화장도. 충혈된 눈도. 한 때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보였던 모든 게 갑자기 싫어져 버렸다. 기대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내가 손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섰다. 돈, 시간, 감정, 평판, 자유. 사랑한다는 말을 뱉자마자 미워져 버렸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래서는 거짓말이나 다름 없게 된 거 아닌가. 아마 이 건물 안의 누구도 그녀가 방금 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을거다. 하지만 나한테 그녀는 한순간에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실이라도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진실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다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고마워."


였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꺼낸 순간 더 이상 고맙지 않게 되어 버렸다. 고맙다는 말이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인간적인 연결마저 끊어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상한 일이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데 하는 말마다 거짓말로 변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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