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는 하루에도 도서관 수십 만개에 책을 채워넣을 수 있을 만한 양의 정보가 생성됩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정보는 도서관 한 층에 담을 수 있을 만한 분량이, 1000년이 지난다면 서가 구석에 책 한 권도 다 채우지 못할 분량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생성하지만 대부분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 밖이 됩니다.
만약 오늘 생성 되는 수십억 기가바이트의 정보들 중에 40세기에도 남아 전세계 어디를 가도 여전히 이야기되는 것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어떤 내용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종이에 기록한다면 지구를 꽉 채울 만한 분량의 정보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와 철학은 짧게는 수 십년에서 길게는 수 천년간 보존되어왔고 수 십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읽혀왔습니다. 글을 기록할 종이 한 장 구하기 힘든 시대부터 일상 생활이 바쁘고 자극적인 컨텐츠들이 넘치는 현재까지 남아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살아남은 종교와 철학의 특별한 점을 보는 두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접하고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기억을 쾌락을 반복하고 같은 실수로 인한 고통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자극적인 것을 오래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극적인 이야기나 자극적인 동영상도 다시 찾아보는 경우는 많지 않고 몇 년이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집니다. 수 천년의 세월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극적인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두 번째는 권력 관계가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객관적으로 여겨졌던 과학의영역을 관찰한 결과, 과학의 기존 논리가 바뀌고 새로운 논리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권력 관계가 개입한다고 말합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 관한 쿤의 이론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종교혁명의 구조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습니다. 종교의 흥망성쇠는 권력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만약 391년에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지 않았다면, 18세기 이후 권력의 중심이 여전히 동양에 있고 유럽에서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승려를 유럽에 파견했다면 기독교의 양상은 현재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로마가 멸망해도 기독교는 퍼져 나갔으며, 현대인들에게는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전세계 20억명 이상의 신자를 가지고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권력은 종교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치지만 종교 자체가 가지는 경쟁력이 없다면 결국은 도태되게 됩니다. 권력 관계의 개입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사상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단일 요인이 되기는 부족합니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사상이 살아남는 이유에 대한 통합된 유명한 가설은 조금 뜬금없게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게서 들을 수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사람들이 생각이나 믿음을 전달할 때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총칭하는 개념인 밈이라는 개념을 통해 종교와 철학과 같은 문화적 컨텐츠에도 생태계와 같은 자연선택이 적용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가 퍼지는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자는 자기복제를 통해 증식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생명체의 대부분은 암수결합으로 자식을 낳음으로서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자는 종종 돌연변이를 일으켜 기존의 개체들과 다른 특성을 가진 개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가져온 변화가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면 돌연변이 개체가 오래 살아남고 많은 자손을 남겨 돌연변이 유전자가 많이 퍼질 것입니다. 하지만 돌연변이 유전자가 가져온 변화가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돌연변이 개체는 돌연변이 유전자와 함께 도태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결과를 놓고 본다면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유전자의 존속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유전자를 밈으로 바꾸고 개체를 개인과 사회로 바꾸어 생각해보겠습니다. 밈의 존속은 '밈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생존과 존속에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기독교가 경쟁하던 수 많은 종교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기독교를 믿는 개인과 사회가 잘 살아남고 오래 존속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 만명의 철학자 중 우리가 여전히 소크라테스를 이야기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해한 개인과 받아들인 사회가 더 잘 살아남고 오래 존속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전이란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것이다." 라는 말처럼 고전은 현대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이후 기독교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우리나라 국민의 46%는 종교가 없습니다.
고전은 신비주의적이거나, 부담스러운 두께를 자랑하고 종교적 믿음은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잘 살아남고, 지배적인 문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었던 비법이 담겨있습니다. 고전을 현대어로 풀어내는 것과, 종교적 믿음을 가지지 않더라도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종교와 철학에 대해 연구한 수 많은 사상가와 학자, 종교인의 지혜를 빌려 종교와 철학이 우리 삶에 줄 수 있는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