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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Nov 09. 2023

즐거움은 만병통치약

부처나 노장사상, 인도 신비가 등등을 접하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세상엔 절이나 교회를 다니지도 않고, 고전 같은 것엔 관심도 없으며 명상이나 수행 같은 것과는 전혀 관련 없이 사는 사람들 중 부처 같은 모습으로, 도인 같은 모습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비결이 뭘까? 수 십년 간 절에서 생활한 스님도 번뇌에 차 있고, 동양철학 전문가라는 사람도 조금만 무슨 일이 생기면 흥분하고 화내고 무너지는데. 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성인처럼 살고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 비결은 즐거움이다. 


즐거움에 차 있는 사람은 탐욕과 분노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 쓸데 없는 것을 머리에 채우고 자신이 세상과 스스로의 마음을 잘 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노자가 말하는 물 같은 도처럼 자연스럽게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도 쓸데 없이 권력이나 명성을 쫓지도 않는다.


즐거운 사람을 만드는 것. 그건 어느정도는 기질 차이도 있는 것 같다. 두려움보다 즐거움을 느끼는 기질. 어린 시절 환경의 차이도 있을 거다. 


기질과 어린 시절은 이미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하나. 온갖 두려움과 불만족을 가지고 있고 무엇이 즐거운지에 대한 감각도 어느새 무뎌진 사람은 어떻게 하나?


내 생각에 부처는 기질적으로 즐거운 사람이 아니었다. 부처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다. 완벽한 음식, 잠자리, 여자...필요한 것은 모두 주어졌다. 심지어 조금의 걱정도 만들지 않기 위해 노인과 병자는 부처에게 보이지도 않게 했다. 그런데도 부처는 즐거움을 못 느끼고 출가를 해버렸다. 이정도면 세계에서 가장 즐거움을 못 느끼는 사람이라고 봐도 될 수준이다.


왜 즐거움을 못 느끼는 사람이 깨달음의 상징이 됐을까? 모든 사람에겐 나름의 깨달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자신이 즐거워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평온해지고 만족스러워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즐거움을 잘 느끼는 사람에겐 깨달음이 쉽다. 그냥 밥 잘 챙겨먹고 건강에 큰 문제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병이 찾아오면 깨진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찾아오면 깨진다. 전재산을 날리면 깨진다. 하지만 부처의 깨달음은 외적인 모든 일을 넘어서 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부처의 깨달음을 깨트리지 못한다. 그건 부처가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로병사라는 본질적인 문제 앞에서 즐거움이 언제나 깨질 수 있다는 사실에 불만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질 때문이든 살아온 배경 때문이든 현재가 영 즐겁지 않더라도. 그것은 더 깊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성현들이 하는 일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과 같다. 그냥 더 만족스럽게 살고자 하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법을 성현들은 전해준다. 충분히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면 부처가 필요없다. 노자도 필요 없다. 예수도 필요 없다. 어떤 배움도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에겐 평생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부처는 즐거움을 못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줄 뿐이다.  


하지만 부처가 필요 없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길거리를 걸어다니면 영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이 많다. 화난 사람, 불만족스러운 사람, 영 정신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어딜 가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종종 '저 사람한텐 부처가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을 생불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지만 생불이라 하기엔 좀 그렇다. 부처는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비인간적인 경지에 오른 사람이니까. 


아무튼 즐거움이 만병통치약이다. 즐거운 사람에겐 부처가 필요없다. 굳이 부처를 찾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즐거운 일을 하면 된다. 즐거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 곧 부처다. 즐겁지 않다면 탐진치를 버리려고 명상을 할게 아니라 그냥 취미 활동을 하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던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면 된다. 즐거우면 저절로 탐진치는 사라진다. 


하지만 부처는 언제나 곁에 있다. 노자도 예수도 많은 성현들이 언제나 하나의 가이드를 들고 옆에 있다. 변하지 않는 즐거움과 평온함. 지복을 알려주기 위해.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여러모로 쉽지는 않은 가이드긴 한 것 같다. 쉬운 길이 있다면 언제나 쉬운 길이 옳다. 굳이 어려운 길을 찾을 필요가 없다. 즐거움이 불성을 만들고 즐거운 인간이 부처다. 


잘 먹고 잘 자고 재미 있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재능을 살리고 땀흘려 운동하는 그런 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는 그런 일. 어떤 일이든 걱정과 두려움을 잊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일. 그런 일이 곧 부처에 가까워지는 일이고 예수에 가까워지는 일이고 도를 닦는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처가 필요없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부처를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 부처에게서도 성경에서도 장자에게서도 그냥 알아두기만 해도 누구한테나 한 번쯤은 도움이 될만한 부분도 많은 것 같다. 필요없다기 보다 억지로 쫓을 필요는 없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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