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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an 18. 2024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먹어라. 배가 불러질 것이다.


만큼이나 당연한 말이다.


구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부정한다.


자기 스스로와 단절되어 버린 사람들은 부정한다.


원하는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이 자신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돌아간다고 말한다. 


강인한 사람. 외부 세상보다 강한 무언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기를 구하다가 스토커를 얻는다. 높은 곳에 오른 후에 높은 곳에서 떨어져버린다. 하나를 구하다 다른 하나를 놓치고 욕망과 젊음이 지나가면 믿음을 잃는다. 


현인과 같이 살지는 못해도 현인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잠시간이나마 현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구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완벽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기다리는 완벽은 오지 않는다. 완벽해짐을 구해야 완벽해진다. 그들은 윤회를 끝내야 부처가 될 수 있음을 못본 척한다. 


그들의 마음 속에서 온갖 짐승이 날뛰고 있다. 탐욕스러운 자. 감정적인 자. 어리석은 자. 호전적인 자가 쉬지 않고 말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 생이 끝나기 전까지 그들이 조용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 중 목소리 큰 자에게 휩쓸려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될 것이다.


짐승에게 자유를 주라. 탐욕스러운 이에게 발언권을 주라. 그들과 함께 살아라. 그대가 원하는 것은 부처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원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이가 원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부처의 세상에도 개는 있다. 사람은 있다. 다만 그들은 그대의 개처럼. 그대의 사람처럼 미치지 않았을 뿐이다. 자연스러운 개이고. 자연스러운 사람일 뿐이다. 부처는 그들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들에 대해 무언가를 원할 필요도 없으며.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하지만 그대의 개는 미쳐있기 때문에 사람을 문다. 그대의 사람 역시 미쳐있기 때문에 온갖 고통을 끌어모은다. 그대는 그들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무언가를 원해야 하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대의 세상에는 그대 하나 뿐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짐승과 사람들이 날뛰고 있다. 


이들은 시야만 앞서 나가 있다.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땅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곳에 가 본 사람처럼 말할 수 있다. 애니를 너무 많이 봐서 일본에 대해 일본에 직접 사는 사람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들은 진리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진리를 사는 것은 그들의 머리 뿐이다. 그들의 세상 속에는 현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짐승과 어리석은 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현인이 단상에서 내려오면 짐승이 단상에 올라가 어리석은 짓을 한다. 짐승이 단상에서 내려오면 어리석은 자가 단상에 올라가 온갖 고통을 만들어낸다. 


현인이 짐승을 길들이고 어리석은 자와 더불어 산다면 부처와 가까워지는 길이다. 하지만 짐승을 못본 체하고 어리석은 자를 내쫓는다면 현인은 짐승의 날뜀에 지쳐 그를 떠나버리고 싶어질 것이다. 어리석은 자를 내쫓는다면 그는 타인의 모습을 빌어 나타남으로서 그가 타인을 바꾸겠다는 엉뚱한 시도를 하게 만들 것이다. 


그대의 짐승이 원하는 것을 들어라. 그대의 어리석은 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라. 그대의 현인과 같은 발언권을 주라. 그대의 세상을 독재체제로 만들지 말라. 무법지대로 놓아두지도 말라. 그대의 세상에 민주적 질서가 들어서도록 하라. 그대의 짐승이 길들여지고 어리석은 자가 정신을 차리면 민주적 질서도 필요없게 된다. 무위자연으로 그대의 세상이 돌아가도록 하라. 그때 그대는 아무 긴장도 필요없다. 아무 억지도 필요없다. 아무 고통도 필요없다.


그러므로 부처와 같은 현인만이 말할 수 있다.


구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완벽하다.


부처는 더 없이 평온하다. 부처는 웃지도 않는다. 울 일이 있는 사람이 웃는다. 웃음으로 덮어야할 것이 있는 사람이 웃는다. 부처는 긍정적이지도 않다.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 같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물은 물일 뿐이다. 


마음 속에 수많은 짐승을 놓고 모든 것은 완벽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웃었다가 운다. 긍정적이었다가 부정적이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밖으로 말하는 동시에 안에서는 완벽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져간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강인한 사람이라면 독재자처럼 구할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한계도. 현인의 말도. 무시하고 욕망이라는 호랑이를 타고 달릴 것이다. 하지만 모든 욕망은 사그라든다. 강렬함은 퇴색된다. 그대의 호랑이가 지칠 때 호랑이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창을 던질 것이다. 그대가 여전히 호랑이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대 역시 함께 창에 맞을 것이다. 


영적인 사람이라면 현인처럼 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인이 아니다. 현인을 이해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 역시 호랑이를 타고 달려야 한다. 그리고 그의 현인은 그가 호랑이에서 내려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현인은 호랑이를 잡아타지 못한다. 그의 세상에서 현인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호랑이를 잡아챌 전사를 찾기는 힘들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이 말과 상관없이 산다면 영원한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나올 수 없다. 구하면 얻게 된다. 얻으면 새롭게 살게 된다. 수 백 가지의 새로운 삶을 끝낸 것이 부처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원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믿어라. 그러면 실현될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하느님의 뜻이다. 


현실적으로 안 될 것이다. 그런 욕망은 비윤리적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라. 이것은 사회의 섭리다. 인간의 뜻이다. 


몇 백 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의 섭리와 무한한 시간을 품은 자연의 섭리. 


현명했다가 어리석은 인간. 선했다가 악한 인간. 탐욕스러웠다가 베푸는 인간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만드는 인간의 뜻. 모든 인간의 전체성이자 세상이자 통합된 전체인 신의 뜻.


신의 뜻을 못 보는 자에게는 고통이 있다.


인간의 뜻을 보지 않는 자에게는 돌팔매질이 기다린다. 하지만 일평생의 돌팔매질도 신의 뜻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테니. 신의 뜻을 못볼 바에는 인간의 뜻을 보지 않고 사는 게 나을 것이다. 


신의 뜻이 끝나는 곳에서 자비로서 나아가는 것은 부처의 길이다. 신의 뜻이 끝나는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자연의 길이다. 신의 뜻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안타까운 길이다. 


신의 뜻은 그대의 욕망을 통해 드러난다. 신의 뜻을 끝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많다. 젊고 강인할 때에는 격정 때문에 끝내지 못하고. 욕망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이는 무지 때문에 끝내지 못하며. 욕망이 작아지고 미지의 욕망이 줄어들어도 욕망의 끝은 고통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끝내지 못한다. 


  그대의 진정한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곧 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대는 선해지고자 해서 선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영향력을 퍼트리고자 해서 퍼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짓은 오히려 균형을 망치고 어딘가에 반대의 힘을 더 키울 것이다.


그대가 세상을 돕는 방법은 그대의 신의 뜻을 사는 것 뿐이다. 그대의 짐승도. 어리석은 자도. 신까지도 물러난 후에야 그대는 자비를 가질 수 있다. 그 전까지 그대는 자비를 가질 수 없다. 자비로운 마음이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 억지로 자비를 가지려고 하면 오히려 모든 것을 망칠 뿐이다. 자비 뿐 아니라 무엇도 그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일어나는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대의 신마저도 잠잠해지기 전까지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그대는 이 사실을 잊음으로서 고통 받고 있다. 이 사실을 진리로서 받아들여라. 어떤 반대가 있더라도 믿으라.


얻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라.


배가 불렀으면 이제 음식을 그만 먹어라. 돈을 벌었으면 돈에 대해서는 신경 꺼라. 얻음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신탁을 찾으라.


그대 자신이 되어라.


그대가 전체로서 그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대의 신마저도 지워졌을 때이다. 그때서야 그대는 그대 자신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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