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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Feb 29. 2024

욕망에 대한 단상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 만족하게 만드는 것.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과 멀어질 때,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삶의 취약점이 드러나며 온갖 문제가 생긴다. 


부처는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다. 욕망을 초월한 사람이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은 곧 불행이고. 많은 문제의 시발점이다. 욕망을 억누르는 것과 욕망에 무심한 것은 다르다. 


때로는 어떤 욕망이 넘치도록 충족되면 그것에 무심해지게 된다. 때로는 강제적인 방법으로라도 어떤 욕망과 거리를 두면 그것에 무심해지게 된다. 


욕망에 무심해지는 것이 곧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욕망에 따라 살 때 우리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욕망에 따라 살든 욕망을 억누르든 욕망에 종속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군가 욕망을 초월한 사람에게 물었다. 

"욕망을 초월하고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달라질게 뭐가 있겠습니까. 밥 먹고 일하고 섹스하고 잡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냥 하던 일이지 무슨 일이겠습니까."

"불과 얼마전에 당신이 슬피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렇다면 그건 어찌된 일입니까."

"사람이 슬퍼 우는 것이 뭐가 이상하단 말입니까."

"부처도 운단 말입니까?"

"부처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저 역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게 있습니다. 지구에게 의식이 생기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고 공전을 멈출 이유가 있습니까? 살던대로 살 뿐입니다. 지구가 공전을 멈춘다면 균형을 깨뜨리고 혼돈을 가져올 뿐입니다. 나는 공전하는 지구입니다. 부처는 궤도를 벗어난 지구입니다."

"부처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까?"

"혼돈이 에너지이고 에너지가 성장이며 성장이 자유이자 평온인 초월의 상태를 촉진합니다. 부처는 혼돈으로  많은 사람들을 자신과 같은 의식 수준으로 이끌려 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부처처럼 하지 않습니까?"

"부처에겐 부처의 인생이 있고 나에겐 나의 인생이 있을 뿐입니다. 불과 칼을 주러 온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고. 아테네의 등에가 되겠다던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받았습니다. 뒤틀린 욕망이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에 공전 궤도를 벗어나 혼돈을 가져오든 자비와 사랑으로 초인간적인 이유로 궤도를 벗어나 혼돈을 가져오든 혼돈을 가져오는 사람은 질서를 지키려는 에너지와 반발을 빚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에게 욕망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좋은 일이고 그것에 반하는 행동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자유가 있다면 거기에 좋고 나쁨을 가르는 기준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것을 따라야 하고 나쁜 것을 피해야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부처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내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아기가 울음을 멈추고 언어를 배우듯이. 본능적인 욕망을 멈추고 사회적 욕망을 배운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언어가 아닌 느낌. 느낌은 언어보다 크다.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욕망은 사회적인 욕망보다 크다. 


본능적인 욕망은 사회화된다. 잠드는 것과 같이 된다. 잠들었다 깨어난 욕망은 원시인의 욕망이 아니다. 나의 욕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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