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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Mar 27. 2024

뻔뻔스러움은 둘째 가는 행복이다


죄와 지옥은 각자에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에게는 나의 선악이 있고. 그에게는 그의 선악이 있는 것이다. 설령 나의 선악이 사회의 기준과 일치하고. 경전의 뜻과 같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개는 지금의 인생트랙에서 벗어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개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나쁜 사람은 있다. 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식해 고통받음으로서 지금의 인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죄책감의 고통이 죄의 면면을 파헤친다. 그로서 무의식적인 죄의 씨앗이 사라진다. 


고상하고 차분하다가도 예기치 않게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는 것은 그 안에 싸움의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벽에 대고 온종일 화를 내지는 않는다. 


죄의 씨앗이 사라짐으로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지도 죄에 휘말리지도 않는 인간이 된다. 그가 변화하게 되면 죄책감은 사라진다. 


죄책감을 상기하지 말라. 죄책감에 빠져들지 말라.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죄책감이 있을 뿐이다. 


미디어가 학교폭력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든 당당함을 잃지 말라. 유명인의 성적 추문이 어떤 비난을 받든 자신의 성적 욕망을 심판하려 하지 말라. 


뻔뻔스러움은 둘째 가는 행복이다. 


뻔뻔한 인생엔 걸림돌도 궂은 날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인생길임은 변하지 않는다. 


죄책감으로 찬 인생은 아름다움을 잃은 인생이다. 누구도 걷고 싶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을 통해 인간은 첫째 가는 행복을 얻게 된다. 


허나 그것은 구도의 길. 아름다운 인생길에 마저 권태를 느낀 사람의 길. 누구도 죄책감을 강요할 수 없다. 죄책감을 느끼기로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일 뿐이다. 


사회와 주변인이 주입하는 죄책감이 만드는 것은 첫째 가는 행복이 아니다. 사회적인 인간. 무해하고 희생적인 인간이다. 


스스로 나약하다고 느끼는 인간은 주입된 죄책감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여 무해하고 희생적인 인간이 되는 우중충한 삶의 길을 간다. 


하지만 내가 말하노니 나약한 인간은 없다. 자신을 알지 못해 나약하다고 믿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강하다고 말하라. 모든 주입된 죄책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뻔뻔한 삶을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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