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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n 07. 2024

개인적인 고전 티어리스트

우선 성경을 S급으로 놓겠습니다.


성경은 사실 완독하기가 쉽지 않고, 그 내용을 보다보면 좀 와닿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불경을 봐도 아침 방송에 나올만한 건전한 생활 팁이나 꼰대 소리 들을만한 좀 경직된 기준 같은 것들도 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음이나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 있잖아요.


불경은 워낙 방대하다 보니까. 법구경 같은 건 좀 비교적 대중친화적으로. 아침방송스럽게. 쓰인 면이 있고. 반면에 화엄경 같은 건 좀 더 깊이 있는 통찰이 주가 되고 그런 게 있죠.


그런데 성경은 한 권에 다 담긴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철지난 아침방송도 있고 일상을 사는 우리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심오한 '신의 말씀' 같은 구절도 있고 그런 면이 있죠.


그래도 결국 성경은 그 깊이에 있어서도.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영향력에 있어서도. 결국은 s급에 놓을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산상수훈 같은 부분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볼만한 가치가 있고. 그 산상수훈에 담긴 어떤 메세지가 서양의 정신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지금 성경의 영향력만 봐도 알 수 있죠.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 다음 S급은 장자인데요.


장자하면 노장사상의 핵심이죠. 그런데 노자가 선배이고. 도덕경이라는 유명한 글이 있는데 왜 장자가 먼저냐 하면. 


도덕경은 너무 난해합니다. 도덕경은 노자가 억지로 써준거라는 설이 있잖아요? 원래 노자는 글을 남길 생각이 없었는데. 그 국경 문지기가 '노자가 글 하나 써주면 얼마나 후대에 도움이 되겠냐' 하면서 노자가 국경을 못지나가게 막고 글을 쓰게 해서 나온게 도덕경이라잖아요. 


글에서도 그런게 느껴지는게. 노자는 딱히 이해시킬 생각이 없어요. 노자 사상이 사실 상식적인 생각하고는 반대되는 면이 많거든요. 그래서 그걸 이해시키려면 좀 차근차근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다' 이런 과정이 있어줘야 될 것 같은데. 그런게 없어요. 그냥 물처럼 살아라에요.


그런데 노자같은 사람은 물에서 삼라만상을 깨우치겠지만, 정신 없이 사는 우리가 물처럼 살라고 해서 뭘 알겠냐고요. 그런면에서 장자는 노자보다 친절합니다. 과정이 있어요. 이래서 이렇고 저래서 저렇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전개가 권위적이거나 딱딱하지 않고. 유머러스해요. 일부로 웃길려고 쓴 것 같아요. 실제로 장자를 읽으면 웃긴 부분들이 있을 거에요. 어떻게보면 블랙코미디의 원조에요. 


노장사상은 상식에 반대되는 면들이 많죠. 그게 어떤 면에선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는데. 또 이게 굉장한 장점인게. 사실 상식이 잘못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뭐 고등교육을 못받아서 잘못되고.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 잘못되고 이런 뜻이 아니라. 그냥 상식적으로 사는데 불행하고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면 그게 상식이 잘못된 거지 뭐겠어요. 그럴 때 장자를 만난다? 바로 그냥 새사람되는 거죠. 



그 다음 A급은 세 권을 제가 동시에 나열을 해볼게요. 왜 이것들은 S급에 못끼고 A급이 되었냐 하면. 가장 큰 이유는 이 임팩트에요.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이게 얼마나 사람들에게 와닿게 표현이 되었냐. 어떤 포인트를 잡았냐. 또 얼마나 영향력이 있냐.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A급도 굉장히 좋은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이 책들은 정말 천재가 썼다는 느낌이 든다면. 장자 같은 책은 정말 신선이 인간 세상에 와서 남기고 간 책 같아요. 성경도 마찬가지로 예수가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천재 너머의 신성한 존재지. 그래서 말하자면 A급 책은 천재가 쓴 책같다. 


첫 번째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이게 제목처럼 명상을 하면서 자기 마음을 잘 살펴보고 쓴 책 같은 느낌이 들어요. 또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였잖아요? 그러니까 솔직히 '살다보면 고난이 있다. 그럴땐 어쩌고' 뭐 이런 평범한 얘기를 해도 이게 '여자친구한테 차였어요' 이런 고민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 '생명의 위협' 뭐 이런 고난을 겪어보고 하는 이야기겠구나 싶은 면이 있죠. 


 두 번째로 논어. 논어는 사실 아까 말했던 '아침방송식 건전한 생활' '꼰대소리 듣기 좋은 권위적인 면'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보이죠. 근데 그게 사실 너무 강요되고 과해져서 문제인거지. 공자왈이 잘못된 게 없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자같아지면 그게 유토피아에요. 유토피아보다 더 유토피아입니다. 


세 번째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입니다. 이 사람이 논리학의 선구자 잖아요. 논리적으로 딱딱 인생에 대해 말을 합니다.  논리라는 것도 쓸데없는 논리만 하루종일 붙들고 있으면 쓸모가 없죠. 포인트를 잘 잡아야 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적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논리를 딱딱 가지고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다음은 B급입니다. 사실 B급이라는 말 자체가 고전에 어울리는 말이 아닌데. 그냥 뭐 어쩔 수 없이. 편의상 나누는 것일 뿐이에요. B급이 A급이 못되고 B급이 된 이유는 뭐냐. 가장 큰 이유는 B급은 인간적입니다. 장자도 인간이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인건 맞는데. 적어도 글에서 보면 인간적이지가 않아요.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인간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이게 옛날 예언자들은 자기가 말을 떠드는게 아니라 신의 말을 받아서 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어떤 한 인간을 넘어선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들을 합니다. 반면에 B급에 선정된 사람들은 어느정도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근데 사실 그게 오히려 더 장점일수도 있는게. 인간적으로 얘기해야 사람들이 알아듣죠. 만약에 성경만 딱 있고 신학도 없고 목사도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튼 신학자들은 그 종교라는 틀 안에서만 이야기를 하죠. 그게 물론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제약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제약이 있어서는 고전에 들만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첫 번째 B급은 칼 융입니다. 정신분석학자.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고 의학 박사 학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돌아가신지 70년 정도 된 비교적 굉장히 최근 분이죠. 2차 세계대전도 예측하고 그랬던 분인데. 아무튼 융은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합니다. 근데 신앙인이라 하기엔 애매해요.


bbc 인터뷰에서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라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씩 웃고는 '저는 신을 압니다.' 라고 대답을 했던 적이 있죠. 이게 무슨 말이냐? 융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나는 글에서 신이나 악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인간 무의식의 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말일 뿐이다.' 라고요. 


그러니까 융은 인간의 정신 속 신을 안다는 거에요. 인간이 어떤 의미에서 신을 생각하고 그것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런 걸 안다는 거죠. 그럼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신이 인간 정신 속에 있는 게 다가 아니다. 신은 외부적 실체로 존재한다.' 거기에 대해 칼 융 식으로(?) 제가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신은 인간 정신 속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적 실체로서 존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좀 더 나아가자면 한 인간의 정신은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온 우주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인간의 정신 속에 신이 있다는 것은 곧 우주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면 사실 논의가 너무 복잡해지죠. 복잡하다기 보다는 그냥 쓸데없는 논의가 되기 쉽죠. 다만 융은 신과 인간 정신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아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러니 융이 '내가 신을 안다' 고 말을 하면 아무나 '니가 뭘 알아' 라고 말할 수는 없는거죠. 


실제로 융은 기독교 역사 뿐만 아니라 연금술, 영지주의, 원시 사회의 신, 고대 신화와 상징, 심지어 노자까지 다양한 연구를 해왔고. 수많은 평범한 사람부터 당대 최고의 지성은 물론 부자와 권력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정신과 의사로서 만나본 사람입니다. 존중하세요!


두 번째 B급은 네빌 고다드입니다. 네빌 고다드는 자기개발서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인데요. 그 유명한 시크릿이나 R=VD같은 자기개발의 할아버지뻘 되는 분입니다. 


네빌 고다드의 강의는 성경을 굉장히 많이 인용합니다. 하지만 말이 인용이지 가끔 보면 성경 구절을 가지고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성경 해석은 아니죠. 


예수님의 어떤 행보를 자기개발적으로 해석을 많이 하는데요. '예수님은 의심 하나 없이 이미 이뤄진 것을 믿었으며. 바라면 얻을 것이라는 진리를 행하고 있었다.' 이 테마가 네빌 고다드에게서는 굉장히 많이 반복됩니다. 


전형적인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최근 사람이고. 돈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고. 그런 느낌이 있지만. 고전이란 것은 한 점 부끄럼없이 쓰여져야 하고. 사람들에게 와닿는 혹은 필요한 메세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면에서 봤을 때. 고다드도 고전으로 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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