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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n 10. 2024

선악에 대하여

신: 선이란 무엇인가? 선은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일. 온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당당하게 없는 일. 마음 어딘가에선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는 일이다. 


김: 그렇다면 히틀러도 선이었다는 말인가요? 히틀러를 찍은 사진을 보세요. 얼마나 당당하게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녔습니까. 히틀러만 그런 게 아니죠. 온갖 중범죄를 저질러놓고 당당하게 다니다 들킨 공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선이 무엇인지 딱 정해서 말하기는 힘들어도, 적어도 생명존중이나 친절, 건전한 생활과 이타성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 있잖아요. 


이: 잠깐. 그렇다면 수많은 전쟁영웅은 악이라는 말이 되잖아. 위인이라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친절이나 건전한 생활과는 거리가 꽤 멀었던 사람이 수없이 떠오르는데. 


김: 그래도 신이 방금 말한 선은 좀 이상한데. 그럼 내가 온갖 중범죄를 아주 치밀하고 열정적으로 저지른다음 당당하게 다니면 선한 일을 하는 거란 말이야? 


신: 할 수 있으면 해보게. 하지만 자네의 마음은 자네를 따라주지 않을 걸. 당당하고 싶다고 당당할 수 없을 것이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최선을 다할 수 없을 것이야. 자네가 선이라고 믿는 일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야. 중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자네는 이내 불안에 가득차게 될 거야. 설령 격정으로 일을 밀어붙이더라도 자네의 열정은 따라주지 않겠지. 


자네의 선악개념은 자네가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팔을 움직이듯이. 말을 하듯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그보다는 자네의 심박수에 가깝지. 자네는 심박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나? 잠깐은 가능할지 모르지. 하지만 심박수를 원하는대로 조절할 수는 없어. 


게다가 자네의 선악개념은 자네의 주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한국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온 세계의 현재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지. 자네의 선악개념은 자네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자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김: 떳떳한 일과 온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땐 어떻게 하나요.  저는 부자가 되면 아주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돈 때문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을 증명받는 거죠. 하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는 너무 어려워요. 술자리도 나가야 되고. 돈을 쓸 때는 써야죠. 지금 하는 일로 큰 부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막상 돈 될 것 같은 다른 일을 벌렸다가 잘 안되기라도하면 너무 고생할 것 같거든요. 


신: 자네의 마음은 언제나 자네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의 선악개념은 자네가 해야될 것 같은 일을 알고 있을 뿐이지. 


김: 그게 무슨 말이죠?


신: 사람이란 것은 실수하기도 좌절하기도 욕망에 휘둘리기도 하는 존재지. 가만히 냅둔다고 언제나 옳게 행동할 수는 없어. 


김: 옳은 행동은 뭔데요?


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주변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가장 도움이 되는 행동이지. 


김: 나 자신은 그렇다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지 그런걸 어떻게 알아요?


신: 자네의 마음은 언제나 알고 있네. 자네가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거나. 고정관념 때문에, 격정 때문에, 남들의 말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 잘못 선택할 뿐이지. 자네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네의 직관과 느낌, 욕망과 감정을 존중하면 자네는 옳은 행동을 할 수 있어.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언제나 옳게 행동하지만은 않는다네. 그렇다고 남이 누군가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줄 수 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라네. 옳음이란 그 상황의 그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옳다' '최악은 피할 수 있다'고 말할만한 선택지들은 있게 마련이지. 그것이 곧 만들어진 선이네. 사회에서 말하는 선. 종교에서 말하는 선. 자네 스스로 찾은 선을 제외한 모든 선이 바로 그런 만들어진 선이네. 


하지만 대체로 옳다는 건 곧 틀릴 수 있다는 말이지. 게다가 진정한 선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인데. 조선시대의 사람과 일제 강점기의 사람. 육이오 직후의 사람과 고도 성장기의 사람. 그리고 지금의 사람이 각기 얼마나 다른 생활을 하는지 생각해보게. 


그러니 지금의 자네는 만들어진 선이 옳을 확률이 좀 더 낮은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지. 


김: 그렇다면 저는 만들어진 선 때문에 진정한 선행을 할 수 없는 거군요. 그러니까 부자는 나쁘다는 만들어진 선의 기준 때문에 부자가 되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할 수 없는 거네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신: 자네에겐 두 가지 문제가 있네. 마음을 제대로 돌아보려 하지 않고 쓸데없는 정보와 자극들이 많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 첫 번째고. 설령 어떤 자신의 느낌이나 욕망의 갈피를 잡더라도 그걸 추진해나갈 힘이 없다는 두 번째지. 


우선 두번째 문제를 해결해주겠네. 자네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할만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네. 


김: 어떻게 하면 힘을 받을 수 있죠?


신: 신이 자네를 도우면 되네. 어떻게 하면 신이 자네를 돕는지는 알고 있겠지?


김: 선행을 하면 되죠. 잠깐만요...그런데 저는 종교인도 아니고 방금 진정한 선악은 그 순간에 본인만이 알 수 있다면서요. 그런데 저는 뭔가 생각을 하려고 해봐도 쓸데없는 잡생각이 난다거나 아니면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공상 같은 일들이 생각난다거나. 아니면 선이라고 하기는 힘든 것들이 생각나는데. 그럼 어떻게 하죠?


신: 자네가 종교인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네. 인간이 먼저고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종교지.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만든 것이 아니야. 자네가 종교를 믿건 믿지 않건 자네의 마음에는 신과 같은 무언가가 있고 선악을 가르는 기준이 있어. 자네에게 신앙심이 있고 존경심이 있기 때문에 신이 나온 것이고 죄책감이 있고 당당함이있기 때문에 선악이 나온 것이지. 신이 있어서 자네가 신앙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내가 신이라고 말한다고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투영할 필요는 없네. 나는 자네를 도우려는 것일 뿐이야. 내가 신이라고 말하든 악마라고 말하든 그것은 그냥 표현 방식일 뿐이네. 자네가 종교인이 아니라도 결국은 자네에게 익숙한 표현 방식이지.  


신이 자네를 돕기 위한 선행이라는 것은 꼭 진정한 선행일 필요는 없어. 그냥 자네가 생각하는 선행이면 되네. 비록 즐겁고 열정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하지는 못하더라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일. 이를테면 길가에 쓰레기를 줍는 일이라던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일이라든가. 논어나 성경 혹은 불경에서 권장할만한 일이라든가. 그것은 비록 자네의 마음을 전부 만족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자네 마음 속의 군중, 자네 마음 속의 사회, 자네 마음 속의 신을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 


김: 내 마음 속의 사람들이 날 돕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신: 결국 자네는 마음을 통해 세상을 보네. 자네의 마음 속 사람들이 자네를 돕는다면 자네는 그에 걸맞는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네. 사람들이 자네를 돕는다면 모든 일이 얼마나 쉬워지겠는가. 자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나. 일이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지. 그런데 만약 신이 자네를 돕는다면 자네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자네가 원하는 일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지 않겠나? 


사람들은 선한 사람을 돕지. 신 또한 선한 이에게 축복을 주지. 그러니 자네는 선행을 해야 하는 거야. 그것은 꼭 진정한 선일 필요는 없지. 사람들이 믿는 선을 행하면 사람들에게 자네는 선한 사람이야. 신이 말하는 선을 행하면 자네는 신에게 선한 사람이지.


김: 그러니 무언가를 하기 위한 힘을 받기 위해서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말이군요. 


신: 그렇게 되면 첫 번째 문제는 자연스럽게 쉬워지지. 자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낼수록 마음은 정돈되게 되어 있으니까. 자네가 부자라면 '부자가 되면 어떨까' '뭘 해볼까' 같은 공상 따위는 하지 않겠지. 선함이라는 명확한 지침을 따라가다보면 쓸데없는 고민을 할 일도 줄어들거야. 마음이 조용해지면 자연스럽게 자네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기 수월해지지. 자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는 것. 진정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것. 같은 것들 말이야. 


그 시작은 선행 하기 일세. 우선은 선행을 통해 마음이 움직일 힘을 얻어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이뤄야 진정 자네에게 필요한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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