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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암 Oct 05. 2015

단편소설

향기

  영길은 사람들이 빼곡한 퇴근길의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다. 이 공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는 관심 없는 듯, 이어폰을 끼우고, 시선들은 자신의 손에든 스마트폰을 향해 있었다. 스마트폰이  아닌 것에 관심을 두는 이는 영길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영길 또한 '보통' 사람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 위해 뒷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익숙한 향기가 영길의 콧속을 자극했다. 달콤한 향기였다. 이 향기의 근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뒷머리만 보이는 여인에게서 흘러나오는 향기였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


   영길은 향기를 음미하며, 눈을 살며시 감고, 생각했다. 영길의 머릿속은 과거 여인들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지하철은 다음 역에 도착했고, 또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탔다. 그녀의 향기가 희미해졌다. 한 사람의 공간만큼 멀어진 것이다. 영길은 향기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더욱더 들숨의 강도를 높여갔다. 기분 좋은 향기였다. 기억은 안 나지만, 이 향기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길은 이 향기를 가지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자세히 관찰한 뒷모습은 아담한 키에 정갈한 갈색빛 머릿결이다. 영길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많은 인파로 인하여 그럴 수 없었다. 창문 너머 반사되어 보이는 그녀의 형체는 너무 흐릿하기만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유리창을 응시했지만, 결국은 볼 수 없었다.


   다음 정거장에 지하철이 섰고, 좀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영길은 시야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놓쳤고, 향기도 놓쳤다. 영길은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음을 알았다. 단지 그녀의 뒷모습과 향기만 기억하고 있었다. 영길은 몸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남자의 동공은 커졌다. 그녀가 바로 옆에 있었다. 정갈한 머릿결, 아담한 체구를 가진 그녀가 '나 여기 있어요.'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영길은 더이상 그녀에게서 향기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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