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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암 Oct 16. 2015

단편소설

인터뷰

그녀를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부 박부장한테 가서 안 한다고, 나는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해도, 이번 한 번만이라고 통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김대리한테 부탁도 해봤지만, 박부장이 시킨 일이 있어서 못 한다 했다. 아마 둘이 짜고 나를 보내기 위해 수를 쓴 것이 틀림없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게 홍대의 한 카페로 나갔다. 그것은 내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기다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 하는 소심한  복수였다. 나의 작은 간계는 그녀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켜두고 20분을 기다리고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도 않았으며, 그녀가 왔을 때 일어서지도 않았다. 무게 잡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만이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단호했으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나도 똑같이 무뚝뚝하고, 차갑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대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왔어? 그러게 간만이다."


망했다. 살짝 밀려오는 떨림과, 억지로 연기한듯한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으로 내뱉었다. 제발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어진 대화는 '침묵'이었다.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으며, 무거운 침묵만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인터뷰 시작할게. 최근에 쓴 소설 '절벽의 에서'가 인기를 많이 얻었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이유? 다 이...씨 덕분에 잘 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님! '절벽의 끝에서'는 저의 자전적 경험에서 나왔거든요. 어떤 소설가도, 자신의 생각한 만큼만 쓸  수밖에 없죠. 생각이라는 것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설가들은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절벽의 끝에서'는 제가 겪었던 경험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생생하게 담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님!"


그녀가 내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할 때마다 나 자신이 움찔움찔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와 헤어지고 쓴 소설이 베스트 셀러로 올라, 내가 이런  인터뷰하고 있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나도 물론 그녀의 소설을 읽어 보았다. 나는 그 소설에서 천하의 악당, 나쁜 놈으로 묘사되어 있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어있다. 그 소설을 처음 봤을 땐,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내 실명을 안 써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녀는 나를 그렇게 기억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약간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셨는데, 극 중 김석두를 굉장히 나쁜 남자, 못된 남자로 표현하셨는데, 작가님이 소설에 쓴 김석두가 떠난 다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요? 가령 소설 중 희애가 석두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는 말을 했는데, 석두는 그것들을 담아두고 담아두고 결국 폭발하고, 그래서 희애에게 애정이 식었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소설에서는 단지, 김석두는 연락이 끈기고, 희애가 석두를 찾아갔을 땐 이미 석두는 희애를 버리고 떠나는 걸로 나오잖아요. 저는 그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석두는 약속 장소에 나가서 기다렸어요, 아니 기다렸을 거예요. 나오지 않은 건 희애였어요! 석두는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다고요!"


나도 모르게 말하는 와중에 흥분해서 말이 빨라졌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개졌고, 두 눈은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너무 연하여 커피를 들여다보니, 커피는 없고 얼음만 녹아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인터뷰를 못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시원하게 가버렸다. 나는 회사에 돌아가면, 박부장한테 깨질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한편으로는 무리하게 나를 여기에 보낸 것을 보면, 이미 이런 상황을 예측했을 수도 있었겠다. 어쨌든 난 속에 있던 울분을 쏟아냈고, 십 년 묵은 때를 벗기듯한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만에 개운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밤은 핸드폰도 끄고 어느 때보다도 깊게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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