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22 비니 +706일, "아빠 이름은 동현'
갓 시작된 장마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비니아빠(나)의 생일을 기념해 고모, 삼송할머니(우리엄마)를 만나는 날이다.
비니는 코로나 키즈다. 코로나 극 초기는 아니었기에 성장하며 크게 영향은 없었지만,
그래도 코로나가 한창인 22년에 태어났고,
첫 세포로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도 코로나로 모두가 몸을 사리던 시기였다.
그래, 그러고보니 한살 돌을 몇 주 앞두고 코로나에도 걸렸고 아무렇지 않게 씩씩하게 잘 나았다. ㅎ
그런 비니가 23개월을 잘 성장해서 오늘 나의 아버지 추모공원에 함께 다녀왔다.
오늘만큼은 쉽게 써내려가지 못할 만큼 감정이 휘몰아쳤던 순간 순간이었다.
비니에게 내가 아빠이듯 내게도 당연히 아빠가 있다. 아니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19년에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몸이 허약해진 70대를 사셨던 아버지가 코로나를 겪지 않으신건 또 나은건가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도 면역이 약한 중증환자였던 아버지가 코로나를 잘 이겨내셨을지 확신이 없다.
내가 아버지를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한건 21살때부터다.
성인이 되고야 아버지의 삶이, 그 과정에서의 고민과 고충이 내게도 다가올 미래라는 걸 알았고
다른 여느 20대 대학생 남자보다는 그래도 꽤 빨리, 아버지의 수고로움과 헌신을 생각하며 20대를 보냈다.
내 아버지는 잔병치례가 많았다.
변변찮은 학력과 커리어에도 나와 누나를 바르게 키우셨다.
고등교육과정 수혜를 받지 못해 수학, 영어는 잘 못하셨지만
어릴때부터 독학으로 익히신 한자는 너무나 능통했고,
기민한 머리로 신문기사를 내게 쉽게 설명해주시는 그런 분이셨다.
유년기시절 내 아버지는 두 자녀에게 꽤 엄하셨다.
논리적이셨지만 한번 화가 나면 참지 않는, 나는 가지지 않은 불같은 성미를 가지셨다.
09년말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거주 독립을 이루었다. 당시 고시생이었던 누나와 함께였다.
늘 경제 및 거주의 자유로운 독립을 꿈꾸었지만,
고시생으로 몇년간 탈락의 고비를 마주해왔던 누나와 불같은 성미의 아버지
당시 함께 나와 살고픈 누나의 마음도 나의 독립 결심의 큰 이유였다.
내가 월급쟁이가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이듬해 봄 쯤, 누나와 함께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나와 살고는 싶었지만 아버지, 엄마와의 감정의 고리는 여전히 끈끈했기에
자식으로서 부모님이 서운하지 않도록, 부모님댁과 걸어서 20분거리에 자취집을 얻었다.
그렇게 이후 6년을 부모님을 떠나 살았고, 결혼도 했고, 그로부터 또 몇년이 지나 지금의 비니를 낳았다.
위에서 말했듯이 19년, 아버지에게서 거주 독립한지는 10년 만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고생을 많이 하신 탓에, 아직 창창해야 할 나이에 빨리 찾아온 노환으로 몸이 안좋으신 아버지였지만
그렇게 빨리 하늘나라로 가실지는 몰랐다.
내게 아버지는 무섭지만 언제나 등불같은 사람이었다.
초중고 12년내내 받았던 존경하는 인물이란 질문에 내 대답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비니가 내 아들로 태어나 오늘 내 아버지, 비니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비니가 할아버지의 생생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한없이 밝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사진 속 할아버지에게 “또올게요”라고 인사하고 빠빠이를 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는데 이악물고 참았다.
형용할 수 없는 기쁜 순간에 아들 앞에서 '울보 머틀' 아빠이고 싶지 않았다.
추모관을 나서며 속으로 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그리 늦지 않게 내 속마음을 전하러 다시 오겠노라고.
아버지에게 비니를 보여주었으니 이제 고모와 할머니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예약된 식당에서 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고, 언제나처럼 ”인나“ ”다머거써“를 말하는 비니.
그 모습은 또 어찌나 귀여운지. 아내가 편히 밥을 먹을 시간을 주려고 안고 일어나 식당 복도를 걸었다.
식당 한켠에 놓인 나무에 있는 나뭇잎에 가보자던 비니가 갑자기 나뭇잎을 위아래로 돌려본다.
아래를 보던 걸 위로 돌리고는 ”바꼈네“라고 한다. ”뭐가 빈아?“ 라고 묻는 내게
비니가 한번 더 아래와 위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러고는 내게 ”바껴네(바뀌었네). 생각해바”라고 한다.
“뭐라고 비니야?ㅎㅎ” 이렇게 나는 또 우리 아들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빠가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니 답답했구나 우리 비니ㅎㅎㅎ
“아빠는 동현!“ ”엄마는 OO야” “고모는 OO” “이모는 OO” “할모니는 OO할모니” “할아버지는 OO(할아버지 이름은 아주 정확하게 발음한다.)” ”쌈송할모니“
우리 가족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는 우리 기특한 아가.
오늘도 덕분에 많이 웃고 행복했어 :)
고마워 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