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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ghyun Kim Nov 22. 2020

1393

생명의 전화 상담원의 이야기

1월 출간을 목표로 독립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소설은 써본 적이 거의 없는데, 연습 삼아서 써봤다.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라는 의문이 들어.
강렬한 자연의 빛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시간이 올 때마다.
다음 빛이 나타나기까지는 기다림이 너무 기니까.

'완전히'라는 표현에 달님과 별님들은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다. 근데 압도적인 어둠 앞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한가 봐.
태양이 사라진 후에는 인간들이 아무리 인공 빛을 쏴대도,
누구나 밤인 걸, 어둠 속에 있다는 걸 알잖아? 그런다고 절대 낮이 되지는 않으니까.

사람들은 각자 자기 안에 천사와 악마를 키운대. 그래서 둘이는 끊임없이 싸우는데, 악마는 빛에 약하고 어둠에 강해. 어떤 사람들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데, 순 뻥인 것 같아. 왜냐면 빛이 있을 때는, 이기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는데, 어둠을 동반한 악마가 오면 선명하게 지고 있음을 느끼니까.

악마는 사람들 안에서 막 그런 감정들을 증폭시킨다? 이를테면 외로움, 절망, 분노, 증오, 자격지심, 자괴, 자책, 슬픔, 억울함, 좌절,  그리고 절대 이룰 수 없는 사랑과 행복 같은 것. 그래서 사람들은 악마가 나타나는 시간에는 자신의 정신을 마비시킨다? 막 술을 마시고, 막 소리 지르면서 노래하고, 막 아무 춤이나 추면서 몸을 힘들게 하거나, 아니면 그냥 다 잊어버리려고 잠을 자버리거나. 아무래도 또렷한 정신으로 마주하는 건 무서우니까.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사실 나는 어둠과 악마가 있어서 밥벌이를 한다?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절대 다수는 빛이 자취를 감춘 그 시간에 오거든. 악마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증폭 더 많이 더 깊이 할수록 나를 많이 찾아와. 요즘은 손님이 많네. 지금 같이 추운 날씨에, 지금 처럼 힘든 시기에, 빛의 부재가 길수록, 나를 찾는 사람이 많거든.

내 손님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그렇게 말하더라. 언제 빛이 존재하기는 했냐고. 다시 태양이 뜨기는 하냐고. 천사니 희망이니 사랑이니 행복이니 그런 거 순 다 뻥 아니냐고. 그런 사람들은 어둠에 익숙해져서 이제 빛을 볼 수 없나봐. 어둠에 너무 깊게 들어가서, 악마랑 너무 친해져서, 매일 같이 태양이 나타나도 어쩔 수 없나봐.

"아이씨, 아줌마 뭐야! 경찰 불렀어?!"
내 손님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이렇게 화를 낸다? 근데 나는 나한테 이렇게 화를 내는 게 너무 다행스럽다? 가끔씩 나를 찾았다가 화를 내기도 전에 떠나는 손님들을 만날 때면 내 안에서도 악마가 나타나니까. 나는 그 순간을 아무리 경험하고 경험하고 경험해도 절대 익숙해질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악마랑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아니 반드시 친해야한다. "어, 또 왔어? 괜찮아. 난 너 안 무서워 어차피 맨날 올건데. 난 정신을 마비시킬 수도 없는데..."

나는 나를 찾았던 손님들이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들 안에 악마를 없애주지도, 천사를 키워주지도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그냥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 안에 악마 때문에 힘든지 들어주고 "힘내요 어딘가에 빛이 있을 거예요" 라는 상투적인 말로 묶어두고, 그 사이에 잽싸게 경찰을 부르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근데 그래도 나는 궁금하다? 내 손님들한테 나는 천사일까 악마일까? 빛일까 어둠일까?
근데 나는 가끔 다짐한다? 내가 어둠이랑 더 가까워져서 빛의 존재를 까먹는 순간에는, 나랑 같은 직종에 있는 시시한 사람 따위 찾지 않겠노라고. 그냥 나는 경찰한테 끌려가는 시시한 사람이 될 바에야 그대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겠노라고.
근데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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