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love, languages 5

사랑 vs 혁명

by 신동일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사랑을 소유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파편적이고 순간적으로 보였다. 그게 뭘 대단하답시고 홀린 듯이 특별하고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랑한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나는 차라리 아주 큰 사랑, 늘 영원한 것, 보이지 않지만 초월적인 것만으로 어떤 족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2. 생태주의 언어학으로 연구논문을 준비하면서 존재와 소유에 관한 철학적 논점을 모은 적이 있었다. 생태적 삶은 소유보다는 존재, 공존하고 균형적인 가치를 붙든다. 굳이 우월의 위계를 둘 건 없지만 소유보다는 존재적인 가치가 좋아 보였다. 심판관의 초자아가 강했던 때이기에 이해할 만한 집착이었다.


3. 지금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존재적 자아만큼이나 일상에서 욕망하고 소유하는 사랑의 감각이나 의례이 참 귀하다. 따뜻함이 넘치는 봄날도 그러하지만 요즘처럼 눈부신 가을날이 눈 앞에 펼쳐질 때 누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옆에 딱 붙여 둔 사람이다. 그(녀)와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스를 나누며 흩날리는 가을의 흔적을 힘께 보고 듣고 느끼며 모든 감각으로 만끽하는 사람이다. 예쁜 구슬을 호주머니 깊은 곳에 넣어두곤 씩 웃는 어린 소년처럼 누군가를 꽉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4. 사회학자인 기든스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생활의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바뀐다고.. 나는 비판적 담화/담론 연구를 하면서 언어의 속성을 사회정치적 실천/관행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대학의 연구자로 언어차별, 구조화된 사회질서, 미래의 전망에 무심할 순 없다.


5. 그러나 눈에 보이고 들리고 만질 수 있는 사랑(의 의례)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념이나 거대 서사가 무얼 그리 대단할까 싶다. 인지과학 문헌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우린 사랑하고 그걸 이야기하지 나누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는 유전자라고 한다. 거기에 나오던 논점이었던가... 진심 사랑에 몰입하고 있는 연인들은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6. 어쩌면 고만고만한 사랑의 기억과 의례를 지나치게 낭만화시키고 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나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혁명의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 차라리 일상의 사랑과 그만큼 달라지는 점진적 변화를 선택하겠다. 만나고 사랑하고 노래하는 것에 절대적인 위치를 부여할 수 없지만 사랑은 우릴 꿈꾸고 설레게 한다. 그 욕망은 또 다른 보폭으로, 혹은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7.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작은 일을 감당하고 작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멋진 삶이다. '살아가는 작은 일상'에 관심이 많은 나는 절충주의자, 개량주의자의 태도를 버릴 수 없을 듯하다. 그렇지 않고는 한가롭게 사랑 타령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내 자리에서 유희적이고 감각적으로 뭔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좌든 우든 극단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7. 사랑의 계절이다. 멋진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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