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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Sep 17. 2021

언어와 권력 7

코로나 시대와 대규모 언어시험의 의례

1. 일전에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관련 기사를 보았을 때 취준생들이 필수라는 영어시험을 10번, 20번 치르며 고통스럽게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토로하던 내용이 특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2. 그토록 영어시험을 지루하게 응시해야만 하는 사회적 관행을 또다시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험을 그렇게 자주 본다고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작 지원의 자격요건을 채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은 토익(점수)이 중요하지 않다고 자꾸 말합니다. 그렇지만 토익에 관한 관행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3. 한국토익위원회는 코로나 사태로 중단된 정기시험을 일찌감치 재개했고 수험자에게 마스크를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수험자 간 불필요한 대화 금지, 일정 거리 유지도 시행한다고 합니다. 시험 준비를 할 때 마스크를 낀 채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는 실전 연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고요?     

 

4. 아뇨. 제가 보기엔 참으로 해괴한 그리고 막무가내 영어/교육의 풍경입니다. 대학입시 일정 때문에 고3 학생을 등교시킬 때도 어리둥절했는데 토익시험도 그토록 보게끔 해야 하나요?          


5. 정책도구로, 혹은 행정적 관례로 영어시험을 자꾸만 치러온 탓인가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수험자들이 모여서 동일한 시험지로 표준편차 기반의 위치성을 검증하는 효율성의 믿음체계는 왜 흔들리지 않는 건가요?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이토록 진지할 필요가 없는데도 코로나 시대가 연장될 앞으로도 이렇게 시험을 계속 요구하고 또 순응적으로 따를 것인지요?          


6. 이제 슈퍼 강사도, 비법 학원도, 베스트셀러 공부법도 무색한 시대 아닌가요? 각자가 누군가를 만나고, 온라인 공간을 바라보며, 체험과 상상력을 나누며 공부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누구는 미드를 보고, 누구는 영어책을 읽고, 누구는 해외봉사에 참여합니다. 그런 걸 서류로 보고 판단하거나, 적정 수준만 넘는다고 평가한다면 추가적으로 화상으로 면담을 하거나, 현장에서 일을 해보고 판단하면 되지 않나요?      


7. 누군가의 인성, 잠재력, 역량, 호기심, 리더십 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린 학교와 기업에서 그걸 모두  시험으로 측정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지원자들이 제출한 서류로 판단하고 선발 후에도 시간을 두고 사정하고 계속 지켜봅니다. 영어에 관한 능력도 그렇게 추론하면 안되겠습니까?           


8. 영어는 다르다고요? 잘하지 못하면서 잘한다고 뻥을 칠 수 있다고요? 그럼 다른 건 어떻게 믿나요? 학점, 활동, 관심, 적성, 잠재력... 서류전형과 면접에서 판단하는 그 모든 건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서류가 조작되거나 나중에 문제가 되면 지원자가 책임을 져야죠. 영어를 자주 사용하는 곳이라면 거짓으로 서류 만들지 못할 겁니다. 영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면 기본 역량을 지원자들이 영어를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1-2장 서류로 제출하게 하십시오. 증빙 서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추천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9. 아무래도 못 믿겠다고요? 예. 한편으로 이해합니다. 한국은 상호 신뢰지수가 낮은 국가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믿지 못하니 토익 같은 시험성적을 자꾸 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 영어학습이나 사용에 관해 이것저것 사실 많이 알잖아요. 말하기는 잘 못해도 듣는 귀는 또 있잖아요. 모든 기관은 영어시험 성적을 지원서류에서 완전히 뺄 수 있습니다. 영어성적을 넣게 하면 영어능력을 행정편의로 이해하는 나쁜 관행만 계속 남습니다.           


10. 커다란 공간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연필을 쥐고 (게다가 마스크까지 쓰면서 한참 거리를 두고) 몇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게 하는 사회적 의례는 급한 대로 붙들 곳만 붙들도록 합시다. 언어를 사용하고, 잘하고, 잘할 수 있다는 역량은 한 번에 판단하기 힘듭니다. 시험지로부터 확인한 점수라면 더더욱 믿기 어렵습니다.      


11. 영어를 잘한다는 건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능력은 내면에 축적한 시험기술이 아니라, 기회, 권리, 적성, 관계, 상호작용, 맥락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선 별로라도 우리 회사에서는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서류를 좀 더 쳐다보셔야 합니다. 면접 때 영어로도 물어보십시오. 영어로 물어볼 면담자가 내부적으로 없다면 그곳은 분명 영어시험 성적을 그토록 중요하게 따질 곳도 아닙니다.        

  

12. 시험 시행기관의 입장도 이해합니다. 그런 시험의 사회적 필요도 있었고 중요한 역할도 하셨습니다. 그만큼 넘치는 기득권도 누렸습니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평가의 시대를 준비하십시요. 기업과 학교의 책임자는 여름이 지나기 전에 관련 부서장에서 물어보십시요. 정말 그런 시험과 시험성적이 그토록 유의미한지를 말입니다. 청년과 학생을 돕고 싶다면 마스크를 쓰면서까지 토익점수를 만들어야 하는 고충을 진심으로 경청하십시오.          


13. 우리 모두 영어시험으로 학생들 그만 괴롭힙시다. 청년들 그만 괴롭힙시다. 이제 그만 합시다. 영어능력과 사용에 관한 거짓 정보가 찜찜하다면 시행착오도 좀 합시다. 몇 년만 지나면 우린 토익을 1년에 200만 명이 치르지 않아도 될 언어-평가에 관한 문식력을 서로 갖출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능동적으로 바라보는 대담한 발상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토익 아니면 안되겠습니까? 물꼬가 바뀌면 분명 토익에 관한 열의와 재정은 보다 나은 방향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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