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다시 보기
2011년 한겨레에 쓴 글이지만.. 평가-정책에 관한 연구활동을 재개하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붙들고 있는 같은 생각을 스스로 응원하면서: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연일 화제였다. 탈락하기로 한 가수에게 제작진과 참가자들이 재도전의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화가 났고, 담당 PD는 교체되었다. 약속을 위반하면서 심사의 권위나 공정성을 해친 경우가 이번 뿐만 아니라는 비난이 있었다. 하긴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사람을 두고도, 언제나 선정기준이나 엄밀한 심사 시행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가요 프로그램 뿐에서만 아니다. 한국에서는 대학의 입학사정제도 공정치 않아 보이고, 교사의 수행평가 채점도 의심스럽고, 로스쿨 출신을 검사로 뽑는 과정에서도 누군가가 약속을 위반할 것 같다. 모두 선진적인 평가방식이라고 생각은 되지만 아직은 약속 위반이 쉽지 않아 보이는 수능이나 토익 성적만으로, 혹은 고시라는 눈에 보이는 시험관문을 통해서만 사람을 뽑고 배치했으면 한다. 순위를 매기는 기획과 탈락할 사람이 탈락되지 않았다고 화가 넘치는 ‘나는 가수다’는 우리 사회의 평가문화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나는 가수다’를 이렇게 다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최고 가수의 다양한 노래를 들려주겠다는 ‘좋은’ 의도를 흥미와 재미를 유도하기 위해 ‘나쁜’ 평가방식인 순위 매기기, 꼴찌 탈락시키기를 통해 유지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평가방식의 의미를 설득하고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누가 어떻게 심사할 것인지 참가가수들과도 협의를 하고, 심사단을 엄밀하게 선정한 후에도 심자자로서의 교육과정을 참가자들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하며, 심지어 참가가수나 시청자들도 평가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심사 권한을 위임한다. 탈락한 가수가 심사자로 참가할 수도 있으며, 동료끼리 또 각자 스스로를 평가한 점수도 최종 심사에 반영한다. 가수들 쪽에서 평가방식에 대해서 제작진이나 심사단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대화창구가 있으며, 신뢰감을 서로가 가질 수 있도록 여러 행사도 준비한다. 그리고 결과는 당일에 깜짝 발표되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한가롭게 들리겠지만 정말로 이러한 권한 위임형의 평가방식이 시청자들과 참가자들에게 반복적으로 공유되고 공개되었다면, 김건모의 탈락에 참가자들은 조금은 다르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설령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자고 서로 제안하고 타협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큰 논란이 생겼을까? 당일 초조하게 심사단의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큰 충격을 받고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 표정을 갖는다는 건 어찌보면 참으로 비민주적이고 반지성적인 모습이다.
오래전엔 은행에 가면 새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수선한 무질서를 보면서 조선놈들은 어쩔 수 없다는 자책도 있었다. 그러나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최소한 은행에서는 새치기에 관한 우리 자신의 비아냥이 사라졌다. ‘가수는 없다’에서 넘치는 비난과 야유가 안타깝다. 노래를 참 잘하는 그들에게는 관대했으면 좋겠다. 탈락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개인들만을 비판하기 보다는 평가 시스템의 상상력 혹은 기획력 부재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평가든 마찬가지다. 순위가 있고, 선발과 탈락이 있는 부담이 큰 평가나 대회를 기획하고 시행한다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예측하지 못했던 심사의 결과에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다. 평가의 목적, 과정, 그리고 방식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평가를 받는 사람들에게 없는 신뢰감을 자꾸 가져보라고 채근할 수 없다. 평가를 하는 쪽에서도 시간 쓰고 돈 쓰며 권한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마지막 발표까지 마음 졸이고, 결과에 순복하지 못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다시 다투는 세상에 계속 살 순 없지 않는가?
출처: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710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