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일 Sep 17. 2021

freedom, love, languages 33

혼내는 오디션, 눈물 쏙 빼는 몰카방송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오디션 방송을 즐겨 본다. 그곳에 나온 청(소)년들이 참 잘하지만 꼭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모습과 중첩되어서 그런지 볼 때마다 그들 모습이 공감도 되고 재미도 있고, 그런 중에 마음이 또 복잡해지기도 한다. 특히 방송이 후반부로 갈수록 우승, 경쟁, 탈락, 생존의 말이 넘치게 되면 난 방송을 대개 더 이상 보지 않는다. 


  경연이 한 번 끝날 때마다 심사위원 쪽에선 심각한 표정으로 엄숙하게 말을 전하고 참가자들은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TV 화면을 가득 채운 심사자들이 어쩌다 웃을 때 시청자들도 함께 웃게 되고, 그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 시청자들도 함께 심각해진다. 시선의 권력, 언어의 위계에 시청자도 참가자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긴장, 피로, 압박감, 눈물을 공유하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으면 서바이벌 게임의 오디션 방송 자체가 불편해질 때가 있다. 어느 방송이든 누군가를 매주 탈락시키고 보따리를 싸서 숙소를 나가게 한다. 그러나 경연이 끝날 때까지 함께 계속 생활하고 놀게 하면 서로 더 친해질 수도 있고, 붙든 떨어지든 서로에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다음 경연을 준비하는 동료를 도울 수도 있고 공연의 조연으로 참여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해야 축제 같은 공연을 준비하고, 떨어져도 눈물이 덜 나는 오디션으로 기획되지 않을까? 


  결국 누가 1등이 되던 생존하지 못했다고 한명씩 쫓아내지만 않으면 진심으로 서로 축하하고 축하받는 관계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서바이벌 게임의 방송문화가 참 안타깝다. 우린 올림픽 때도 국가간 순위 경쟁에 너무 심각해져서 타문화를 흥미롭게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우리 자식 너무 붙들고 있다가 다른 집 아이들과 유쾌하게 놀 시간과 공간을 놓치곤 한다. 경쟁에 몰입하며 놀지 못하는 문화는 점점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몰카 방송이 특히 불편하다. 특히 선배들이 작당해서 후배를 매몰차게 꾸짖고 어쩔 줄 모르는 후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 결국 몰카라고 밝히면 긴장이 풀려 후배는 울먹거리는 경우가 태반이고 주위에서는 웃고 달래며 모두가 유쾌하게 웃으며 방송을 마무리한다. 그럴 때마다 난 '혼내는' 몰카 방송에 누가 즐거워할까 궁금하다. 만약 그런 방송을 보며 유쾌하다면 아마도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언어 질서 안에서 편리하게 살고 있는 사람일게다. 몰카에선 즐거운 일상이 드러날 수 없는가? 그렇게 온 국민 앞에서 혼을 내고 눈물을 쏙 빼야 할까? 


  언어를 인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곳, 언어를 통해 엄격한 위계와 규범성이 강조되는 곳. 아버지, 사장님, 선배님이 심트렁하게 앉아 있고 그래서 무섭고 긴장되는 중에 눈물이 펑펑 나는 곳에선 늘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법을 강조한다. '혼내기' 몰카 방송은 전국민으로 하여금 위계적이고 엄숙한 언어 공동체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제발 너무 진지하지 말자. 자꾸 윽박지르지 말자. 언어의 진지함, 위계성, 전문가의 규범에 사실 우린 지쳐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모르게 그와 같은 문화를 일상에서 흉내내고 있지 않는가? 그러한 문화 권력이 우리의 삶을 압박하고 자꾸 허용한다면 개인의 실존은 더 엄격하게 측정되고 위계적으로 고정될 것이다. 놀겠다는 사람은 잘 놀게 자리를 마련해주자. 꾸짖을거면 시간을 두고 구체적으로 뭘 좀 즐겁게 가르쳐보자. 유쾌하게 가르치고 배우고 사랑하는 모습을 우리가 더 볼 수 있다면 혼 내는 방송에 우린 덜 민망할 것이다. 


  삶이 축제이고 선물이라면 방송에서도 축제의 경연, 일상의 축제를 보고 싶다. 싸이(PSY)가 '강남 스타일'로 한참 인기가 있을 때 시청 공연이 기획되고 그때 걸린 타이틀이 '글로벌 석권기념 서울시민과 하는 공연'이었다. 이 제목을 보면 놀 생각이 드는가? 글로벌을 석권했다, 또는 계속 석권하겠다는 자세면 이미 흥은 깨지는 거고 싸이가 놀 곳이 더 없다. 


  그냥 놀자. 유쾌하게.     

작가의 이전글 언어와 권력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