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일 Sep 17. 2021

freedom, love, languages 36

순수에 관한 질문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저는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고향은 대구입니다. 대구와 구미에 가족 친지가 많이 살고 계십니다. 재작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계셔서 대구에 여러번 내려 갔습니다. 이제 더 자주 대구에 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팬데믹이 대구에서부터 갑자기 확산되면서 대구에 제대로 내려가지 못했어요. 


2. 그땐 공포심이 대단했어요. 대구에 정말 사람이 안 다닐 정도였다고 합니다. 제가 의사였다고 해도 분명 대구 지역에 자원해서 봉사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제 가족이 간다고 해도 말렸을 것 같아요. 솔직한 제 심정이었습니다.


3. 그런데 당시에 의사면허증이 있는 안철수씨가 대구에 내려가서 봉사한다고 기사에 나왔더라고요. 기사 읽고 드는 생각이 '아이코 쉽지 않은 결정인데... 수고한다... 감사하다' 그러고 말았는데 다음 날 기사를 보니 이걸 '쇼를 한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니 다른 의사들 피해주지 마라' 그러면서 비아냥이 넘치더군요. 


4. 대구가 그때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거든요. 비아냥 대는 댓글 다는 분들이 대구 시민의 고립감이나 공포심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지 모르겠어요. 당시에 다른 정치인들도 대구에 방문을 잘 하지 않았어요. 쇼든 뭐든 뭐라도 해주면 감사하죠. 


5.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는 지적이 제일 황당했죠. 도대체 그런 순수함이란건 뭘까요? 제가 연구하는 분야가 '응용언어학'이라고 불리는데요 흔히 '순수언어학'이라고 불리는 분야와 대비(대립)되곤 합니다. 재밌어요. '순수'한 언어학이란 말이.. 대체 어떤 언어(연구)가 순수하다는 걸까요?


6. 사전적 의미의 '순수'는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는 순결, 순백, 천진난만한 성격을 갖습니다. 순수의 반의어를 찾아보면 '추악' '추잡' '불순'의 단어가 검색됩니다. 제가 연구하는 언어는 일상의 세상 언어, 미디어와 같은 매체에 등장하는 언어, 욕망하는 언어, 사회정치적인 언어인데 이런 언어로 우린 매일 살아가고 있지만 이걸 연구하는 건 '순수한' 언어학이 아닙니다. 관련 학계는 순수언어학을 코어(core, 핵심)언어학이라고 부르고 그런 분야가 힘도 더 있고 더 중요한 학문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7. 음악도, 미술도, 다른 학문 분야도 이와 비슷한 순수/본질/핵심을 구분하고 있죠. 우린 사랑, 우정, 결혼, 진학, 창업, 기업경영, 혹은 정당을 만들고 정치운동 하는 걸 두고도 '순수한' 정신/의도/비전에 대해 따집니다. 안철수씨의 대구 봉사를 두고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듯이 말입니다.


8. 그러나 저는 '순수'에 힘을 싣는 워딩이야말로 기존권력을 유지시키는 매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담론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가 강조되는 언어사회는 무수한 비-순수를 만들어내죠. 비순수한 의도를 가려내고 배제하기도 합니다. 거창한/신비로운 본질적 순수함은 사실 분명히 보이지도 않아요. 사실 우리는 말이 보태지고, 행동이 반복되고, 공간이 채워지고, 삶의 태도나 신념체계가 변하고 재구성되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하는데. 그 놈의 순수-비순수 대립항은 간편하게도 세상을 이념화시키죠. 왔다 갔다 고민하고, 바꾸고, 다시 해보고, 지금 당장 현장에서 실천하는 행위를 한번에 폄하하기 좋은 방식입니다. 순수는 어차피 내면에 가려져 있는 것이니 대충 추측하고 의심하고 왕따를 시키기도 좋아요.


9. 저는 그래서 순수, 본질, 보편, 늘 같은 진영의 말은 묻지도 말고 찬동하는 집단의 언어를 늘 경계합니다. 유시민씨는 예전에 '보수 편에서 세종대왕이 나와도 자신은 무조건 민주당에 표를 던진다'고 한거 같은데 저는 보수든 진보든 세종대왕이 나오면 세종대왕(의 실천)에 표를 던집니다. 그 무슨 망발입니까. 세종대왕과 같은 실천을 어찌 지나친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분명 세종대왕의 실천조차 다른 진영에 속했다는 이유로, 순수한 의도인지 의심할 것입니다.


10. 코로나 사태는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해결을 해야죠. 해결은 특정 집단/진영/이념/순수한 정신이 못합니다. 비순수의 인생을 살았던, 월급 주니까 거기서 일하든, 갈까 말까 망설였던, 어째거나 거기서 돕고 일하는 개인들의 실천이 해결을 합니다. 


11. 대구에서 당시에 병원 안팎에서, 환자 바로 옆에서, 의료인, 질본 스태프, 봉사자, 관료가 함께 협력하며 사태를 해결했습니다. 오늘 그 자리에서 보이는, 일상적인 실천을 감당하고 있는 (늘 일관된 인생만 살지 못했더라도 오늘 그 자리를 우리 대신에 지키고 있는) 모든 분들, (그곳을 지키고 선택한) 윤리의식, 그렇게 모여진 신념체계에 큰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12. (순수하든 말든) 지킬 자리를 지키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주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언어와 권력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