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죄송해요."

by 신동일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이게 고객에게 할 태도야? 여기 책임자 나오라고 해!”


참 황당해요. 스타벅스에서 차가운 라떼 한잔을 시키면서 고객'님'이 직원에게 “이게 고객에게 할 태도”냐고 고함을 지르네요. 화를 참지 못하고 멱살도 잡고요. 당신의 언어는 예쁘고 착하고 반듯하기만 한데 그걸로도 부족해서 갑질을 하는 고객‘님’들이 여전히 사방에 넘칩니다.


갑질 고객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있겠지만 직원이 사용(해야만)하는 예쁜 언어와 일방적인 고객-직원의 관계도 높은 상관성이 있을 것입니다. 직관적인 판단만은 아닙니다. 나는 말의 위생화, 감정노동, 특정한 언어기술을 가져야 하는 행위자 주체와 권력관계의 논점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거든요. 충분한 근거를 학술문헌으로부터도 제시할 수 있어요.


갑질 고객은 주로 ‘말의 형태’를 놓고 시비를 겁니다. 약간 어렵게 말하면, 말의 권력은 사회적인 관행이 된 장르적 실천으로부터 형성됩니다. 즉, 고객이 갑질의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은 고객이 할 수 있는 말과 직원이 해야 할 말이 장르(적 형태)로부터 이미 권력관계로 구분되었기 때문이죠.


달리 말하면, 말투로부터 시비를 거는 갑질 고객(과의 권력관계)를 균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직원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의 형태에 자유가 허락되어야 합니다. 직원이 예쁘고 착하게 말을 해야만 하는 곳에선 갑질 고객이 등장할 수밖에 없어요. 무례한 고객을 예쁘지 않은 형태의 말로 응대할 수 있다면 고객-직원의 관계는 변화가 생기고 갑질 고객은 분명 줄 수 있어요.


진상 고객의 녹취자료를 분석하진 않았지만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갑질을 당한 직원은 아마도 말끝을 '솔' 톤으로 올리지 않았거나, 평서문이 아닌 (부가)의문문 문장형식을 사용했거나, 종결 어미를 ‘다’로 끝내는 단문이 아닌 ‘요’ 어미, 혹은 접속어로 문장들을 연결한 중문 형태가 등장했을 수 있어요.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죠. 직원이 무례한 내용을 말하진 않았을 겁니다. 직원이 사용하면 안 되는 말의 형태를 놓고 갑질 고객은 시비를 걸고 겁니다.


늘 듣곤 했던 상냥한 말의 형태가 아니었기에 고객은 그때부터 벌써 못마땅합니다. “그게 고객에게 할 태도”인지 따지는데 정작 본인은 양태성으로 볼 때 자신의 말이 곧 진리임을 선포하고 선언할 수 있는 현재형의 시제, 명령문의 문장 형태를 늘 사용합니다.


큰 회사의 직원이든, 작은 식당의 종업원이든, 언어의 맥도날드화(맥커뮤니케이션)을 강요하는 곳일수록 고객의 갑질 횡포는 빈번합니다. 상호간 의미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고요.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음성이든 문장구조든 예쁘고 착한 말을 사용해야 하는 일터는 좋은 곳일까요? 말의 형태를 놓고 트집을 잡는 곳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스타벅스에서 갑질 고객은 목소리를 높여 "본사에 전화해라", "경찰을 불러라" 그렇게 온갖 소란을 피우고는 결국 사과를 받아냅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청년 직원은 의미협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결국 다음 문장(형태)을 건네고 상황은 종결됩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갑질 고객은 늘 들어왔던 착한 말의 형태를 받아냅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네요. 점주, 매니저, 동료 직원분들! 이건 정말 나쁜 관행입니다. 그 직원이 뭘 그리 잘못했나요? 설령 아이스라떼로 잘못 가져왔던, 손님에게 재차 질문 형태로 확인을 했든, 그게 뭘 그리 혼이 나고 죄송한 일인가요?


우선 이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획일적인 말, 메뉴얼 대화로 고객과 의미협상을 할 수 없는 곳이 좋은 일터가 아니란 점. 그런 말을 자꾸 하라고 강요받는다면 거기 있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관계성은 자꾸만 위축되죠. 나올 수 있다면 그곳을 나오면 좋겠어요. 말의 위생화로부터 관계가 위축되고 자꾸 바보처럼 느껴진다면 가만 있지 마세요. 그걸 세상에 꼭 알려주세요. 어딘가 기록하고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지금 그곳을 나올 수 없는 형편이라면 주위 동료와 계속 의논하면서 말의 형태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언어공간으로 바꿔야 합니다. 업주에게 이걸 요구해 보세요. 피고용인에게 말의 형태만이라도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달라고. 물론 그곳에서 요구되는 의사소통의 특성이 있겠죠. 그래도 서로의 인격이 훼손되고 불통이 계속 되는 곳은 성과나 성취가 온전할 수 없겠죠. 그러니 생김새, 체형, 옷차림, 고향, 성별을 놓고 괜한 시비 걸지 말아야 하듯이 웬만하면 말투를 두고도 시비 걸지 말 것.


우리 모두 예쁘고 획일적인 말이 상품적 가치가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죠. 그래서 큰 회사에서는 메뉴얼식 대화를 숙지해서 말하는 방식마저 표준적으로 사용하도록 요구했죠. 그러나 폐해와 부작용이 계속 드러나고 있어요. 서비스업에서 고객과 대면 접촉을 하는 직원이 예쁘고 상냥하게 말해야 한다면 평소부터 그렇게 말하는 직원을 뽑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예쁘고 상냥하게 똑같이 말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오고 사용했던 각자의 말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이제 서로 다른 말(투)에 관대해야 합니다. 혹시 못생긴 얼굴 보면 화나세요? 과체중 인간들 보면 짜증 나세요? 아픈 사람 보면 그저 불쌍하세요? 알바하는 청년들 보면 한심하세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획일적으로 폄하하지 마세요.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단 하나의 말투는 없어요. 말이란 것이 무슨 대단하게 지켜야만 하는 원칙이 있지도 않아요.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들 입에 그렇게 족쇄를 채우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사회적 비용으로, 고통의 부메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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