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not your fault."

"It is not your fault."

by 신동일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오늘 많이 힘들었죠? 지금은 괜찮아요? 그럴리 없겠죠. 터널은 지나가야 지나가는 것이니까요. 슬픔이 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죠. 나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믿었던 교수로부터 몹쓸 일을 당하고 오랜 시간 혼자 끙끙 앓았던 것이죠. 다른 피해자가 사건을 밝히면서 이제야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의 말도 보탤 용기를 낸 것이죠. 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목이 따끔거렸지만 눈물을 참았어요. 그걸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 미안했을 뿐입니다.


내가 정말 안타까운 건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저 믿고 따른 것뿐인데, 당신이 너무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거기 건물만 보여도, 왠지 전화벨만 울려도, 혹시나 갑자기 길에서라도 그 사람을 만날까 신경이 자꾸만 곤두선다고 했어요.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당신이 신중하지 못했다고,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고,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자꾸만 당신을 책망하고 있어요. 내 말이 큰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마세요.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어요.


나도 억울하게 인터넷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요. ‘난 참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나를 쓰레기 사기꾼 교수로 고통을 줄까.’ 황당한 사건으로부터 나는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자꾸만 나도 사람들로부터 모습을 감추고 글도 쓰지 않고 세상에서 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곤 했어요. ‘내가 더 신중하게 잘했어야 했어.’ 나는 충분히 신중했고 열의를 갖고 내 일을 한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바꿀 수도 없는 과거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자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예요. 고통스럽지만 우릴 결코 자책하진 말아야 해요. 폭력을 용인하고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는 세상이 옳지 않아요. 우린 서로 격려하면서 삶을 다시 회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통제하는 폭력과 맞서야 합니다.


우리 얘기를 더 하는 것보다 영화 얘기를 하나 해보죠. 너무 옛날 영화이긴 한데요 20년 전쯤 개봉된 맷 데이먼(Matt Damon)이 주연을 맡은 'Good Will Hunting'입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윌 헌팅(맷 데이먼)은 보스톤 빈민가에 살면서 대학교에서 청소를 하는데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죠. 양아버지의 학대나 가난 때문에 모멸을 당하며 거칠게 살아가던 윌은 수학과 교수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아요. 윌은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교수에게 소개됩니다. 심리치료 과정에서 윌은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회복하는 내용입니다.


맥과이어 교수는 윌이 가진 내면의 아픔에 깊은 애정을 갖고 관찰합니다. 그중에서 맥과이어 교수의 품에 안겨 윌이 흐느껴 우는 장면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맥과이어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상담하는 중에 윌에게 다가가면서 말하거든요.


"It is not your fault.“


몇 차례 말하는 장면이예요. 고통(의 결과)이 윌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교수의 진심이 느껴지지만 윌은 괜찮은 척하죠. "알죠"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지만 "이건 너 잘못이 아니야"라며 맥과이어 교수가 몇 번이고 다시 다가와서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당황한 윌은 짜증도 내고 욕을 하며 교수를 강하게 밀쳐내기도 합니다. 그래도 맥과이어 교수가 다시 다가와서 진심 가득한 얼굴로 "이건 너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을 건넵니다. 결국 윌은 그를 껴안고 서럽게 웁니다.


(그림: ‘Good Will Hunting’ 영화 장면)


입을 삐쭉대며 "나도 알죠"라고 쿨하게 말하는 윌은 늘 상처받았고, 배제되었고, 그래서 아프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고 배반했죠. 윌은 서로 돕고 배려하는 인격적인 사랑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내 탓만이 아니라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건너편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건 너 잘못이 아니야"라고 진심으로 말을 자꾸만 걸어준다고 생각해보세요. 눈물이 나죠.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해준다면 나도 서럽게 울 것 같습니다. 윌은 자신과 처음으로 그렇게 화해를 하게 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대개 이유는 아주 복잡하죠. 일방적이고 억울하게 당할 때도 많아요. 그럼 자기 탓만 아닌 건 분명하죠. 그렇지만 기억과 기대은 왜곡되고 자꾸만 내가 스스로 자책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아, 내가 그때 다르게 처신해야 했는데',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야 했는데', '그때 놀지 말고 그걸 배웠어야 했는데' 그렇게 자신의 결핍, 자신의 문제를 과장하며 스스로 자책합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내 탓으로 돌리면 상황은 간단하게 정리될 것 같네요. 나만 탓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건 관계를 단절시키고 상황을 방치하는 비천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도,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도,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도, 당신 잘못이라며 자책하지 마세요. 원인도 나, 결과도 나로 자책하면 나로 시작해서 나로 종결되는 나만의 문제적 삶을 과장하게 됩니다.

”내 잘못“이라며 자책하지 않고 일단 오늘 하루 존귀한 삶을 선택하기로 해요. 상황을 직면합시다.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동안 울기도 하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겠죠. 그래도 ”내 잘못“ 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지만 않는다면 분명 전환적인 상황도 올 것입니다.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내게 생겼다면 행운이 넘친 기쁜 일이 내게 생길 수 있는 것이죠. ”내 잘못“ 인생만 벗어나면, 이불 밖으로 나오면, 우린 더 씩씩해지실 것이고, 더 지혜로워질 것이고, 더 좋은 사람도 만날 겁니다. 어디 두고 봅시다. 도망가지만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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