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계집년은 꺼져라!’
당신, 캐서린 스위처처럼 야유를 이기고 완주하실 수 있을까요? 완주하지 못하면요? 완주를 하더라도 성적이 형편없다면요? 무모한 도전 아닐까요?
“그 학벌로는 어렵지 않겠니?”“우리 형편으로 말이 되는 얘기니?”“너 성격으로는 안하는게 좋지.”
이런 지적을 수도 없이 들어셨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 얘기는 주로 우리 바로 곁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오죠. 가정에서, 친한 친구나 선배로부터, 잘 안다는 멘토나 교수가 내가 뭘 해보겠다는 계획이나 도전을 한방에 먹이곤 하죠. 해보겠다고 하면 그냥 진심으로 응원하고 돕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요? 참 모르겠네요. 익숙한 패배감 때문인가요? 혹시나 잘 되면 배 아플 수 있는 질투심 같은 것인가?
그냥 익숙한 대로 그렇게 계속 찌그러져 있자는 건데 그런 점에서 보면 청년 때 내 삶의 소박한 목표는 그저 도전해보는 것, 그리고 도전을 ‘완주’해보는 것... 그런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나는 박사학위를 마칠 자신이 없었어요. 제가 아주 젊을 때 허영심 비슷한 걸로 미국의 어느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어요. 유학 준비한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다 말렸어요. 경영학으로 선행지식도 없고 졸업하고 곧장 가면 직장 경험도 아예 없다는 것이었죠.
그들의 경고가 제대로 적중했어요. 나는 1년 만에 큰 이민가방에 짐을 다 쑤셔 넣고 한국에 돌아왔어요. 공부를 마치지 못한거죠. 재미도 없었고요. 귀국한 날 아버지에게 혼날 생각에 고향으로 곧장 내려가지도 못했어요. 당시 여자친구(지금 제 아내)와 함께 다녔던 대학교 앞에서 만났죠. 그냥 피식 웃고는 김치복음밥을 곱빼기로 먹었어요. 배가 무지 고팠는데... 쪽 팔려서 그런지 눈물도 한방울 난 것 같기도 하고 더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아요.
어쨌거나 그러다가 그럭저럭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요 그때 목표는 정말 다른 것 없고 오로지 딱 하나였어요. 졸업! 시작하면 마치자! 내가 스스로 가장 자부심을 갖는 경력 중 하나가 뭐냐 하면 다시 시작한 대학원 과정을 중단없이 완주한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저보다 쉽게 하셨는지도 모르겠어요. 더 대단한 업적을 만들면서 학위를 마치신 분들도 계시겠죠.
나는 그게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나는 그냥 그때 완주한 것으로 충분해요. 완주를 하니까 학위를 얻었는데 그것으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기쁘고 또 그걸 감당하게 도와준 많은 분들게 그저 감사해요. 내 이야기 말고 완주에 관한 멋진 스토리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그걸 나누면서 여러분도 오늘 꾹 눌러 완주를 향한 현재성에 집중해보라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캐서린 스위처(Kathrine Switzer)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67년에 귀걸이를 하고 립스틱을 한 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여성 최초로 완주만 했어요. 대단한 성적은 아닙니다. 그냥 완주입니다.
그녀는 우승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록을 내지 못했어요. 그저 다른 시선으로, 다른 정체성을 안고, 시간마다 순간마다 한걸음씩 내딛고 완주만 했을 뿐이죠. 그런 후에 그녀의 삶은 바뀌었어요.
‘계집년은 꺼져라!’는 조롱을 감수해야 했죠. 아래 사진이 보이는 것처럼 대회 조직위원으로부터 번호표가 뜯길 뻔도 했어요. 피투성이가 된 발로 겨우 완주했는데 그녀에겐 나름의 대범함이 필요했겠지만 사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버틸 만한 일이었어요.
(그림: 보스턴 마라톤에서 대회 조직위원으로부터 저지당하는 캐서린 스위처. 보스턴 헤럴드 신문에서 캡처)
캐서린이 더 잘 달렸다면 뭔가 더 달랐을까요? 모르겠어요. 꼭 더 잘 달릴 필요도 없고 그땐 그럴 수도 없었겠죠. 그런 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말입니다. 삶의 에너지도, 내게 허락된 기회의 장도 무한정 넘치지 않으니 내 삶의 능동성과 확장성을 막연히 낙관할 수만 없어요.
그래도 냅다 그렇게 달려보는 건 참 멋집니다. 난 너무 잘하려고 할 때마다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적이 많았어요. 사실 이건 영업비밀인데... 너무 잘난 분들은 좀처럼 새롭게 뭘 시도하지도 못하죠.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고 타인의 시선도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훈수 하느라고 바쁘기도 합니다. 그들은 남을 잘 인정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쉽사리 결단하지도 못하죠. 캐서린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녀는 스스로 잘난 사람이라고 본인을 과장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난 평범한 교수이지만 새롭고도 모험적인 일을 많이 한 편이죠. 창업을 한 적도 있어요. 이런저런 책을 쓰고 미디어에서 활동도 했죠. 여러 학문 분야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학술활동을 탐색했어요. 20년 동안 140편의 연구논문을 썼어요. 그럴 수 있는 열정의 동인은 아마도 나 스스로 내 역량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요. 아까 내가 말했잖아요. 나는 대학원을 완주한 것만으로 만족했다고.
난 내가 오늘도 하고 있는 일상적인 의례를, 예를 들면 지금 준비하는 책 원고도 캐서린 스위처의 완주처럼 담담하게 마치길 바랄 뿐이예요. 이런 달리기의 메타포가 좋아서 나는 마라톤 대회에도 종종 참여하곤 했어요. 그런데 진짜 난 소질도 없고 근성도 부족했죠. 하위권으로 겨우 완주만 하는 정도였어요. 시카고 마라톤도 6시간만에 겨우 완주를 마쳤습니다.
나는 보스톤 마라톤에 나갈 수준은 되지 않지만 캐서린과 같은 러너는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험적이지만 완주를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할 배짱은 배웠죠.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완주도 이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너무 머뭇대지 않고, 깐죽대지도 않고, 허다한 무리와 어울리거나 그저 고함을 지르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고, 그냥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 성취가 크면 물론 더 좋겠지만 성적은커녕 완주도 하지 못해도, 담대함과 평화로움의 마음을 품을 것 같아요.
‘쇼미더머니 9’ 힙합 오디션 방송을 보는데 참가자 중에서 릴보이 스토리가 유독 눈에 밟혔어요. 2011년에 “Officially Missing You” 싱글앨범을 내면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몇 년 후에 함께 작업했던 이들로부터 사랑 타령이나 하는 가짜 힙합, ‘발라드 랩’따위라며 비아냥을 받았다고 해요. 마음의 상처를 입으니 사랑 노래를 할 때마다 위축되었고 심지어 집 밖으로 나오기도 싫었다고 해요.
나도 그래본 적이 있어서 그 이야기에 너무 공감이 되었어요. 그냥 본방 사수하며 릴보이를 응원했습니다. 그렇게 응원했어요. 어렵게 세상에 다시 나온 만큼, 릴보이가 이번 대회에서 완주하기를, 아니 우승을 하든 말든, 너무 아프지 말고, 더 숨지도 말고, 다시 내닫기를,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응원했어요.
릴보이나 캐서린 스위치가 한 일은 그런 것입니다. 다시 시작한 것 그리고 (모욕이 있더라도) 완주한 것이죠. 몇 번 망설였겠지만 캐서린은 계속 내닫기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는 완주를 했어요. 그것만으로 그렇게 대단하다던 남성만의 (보스턴) 마라톤에 여성이 달릴 자유가 나중에 생기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