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버스를 탔다. 정차 후 버스가 막 출발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출구로 다가간다. 기사가 짜증스럽게 말한다. “할머니, 앉으세요. 버스 서면 그때 일어나 내리세요.” 할머니는 근처 자리에 잠시 앉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금세 출구 앞에 붙어서서 기다린다.
기사가 할머니에게 소리치며 가르친다.
“참나, 그냥 앉으세요. 젊은 사람들 보세요. 도착하면 일어나잖아요.”
할머니는 “예”라고 조그만 소리로 응답하곤 담담한 표정으로 그 자리를 지킨다.
할머니도 분명 알 것이다. 승객이 벨을 누르면 버스가 정류장에 선다. 그때 일어나서 내릴 수 있다는 것쯤은 말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젊은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는 지금 저기서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일찍 준비하지 못하다가 제때 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서둘러 내리려다가 오히려 다칠 수도 있다. 성미 급한 기사들을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다음에 꼭 내려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내릴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 그깟 빈정거림을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닐 터이다.
투덜대는 기사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곤 할머니는 흔들리는 버스에서 출구 앞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과 팔은 너무 주름이 많고 갸냘폈지만 내가 어릴 때 보았던 로보트 태권 V 팔뚝처럼 크고 강해 보였다.
난 할머니 편이다. 결국 할머니는 기사에게 타박을 당하면서 내릴 자리를 꾹 지키고선 다음 정거장에서 의연하게 그리고 천천히 내렸다. 할머니는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내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는 생애 내내 누군가로 그렇게 버티고 지키며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르겠다.
삶이 거지 같을 때가 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차가 너무 막혀 답답하다. 때로는 종점까지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대개 바깥을 쳐다보며 울고 싶을 때이다. 꼼짝 않고 실컷 울고 해결만 되면 좋겠는데 울음을 멈추면 거지 같은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저기 할머니는 어땠을까? 할머니도 울었을까? 할머니는 어떻게 여기까지 버티었을까? 모르겠다. 그런 상상은 했다. 어쩌면 할머니에게 너무 소중하고 사랑하는 누군가 있었을 것 같다. 할머니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 몰랐다. 그저 사랑으로 버틴 것이다. 사랑을 지킨 것이다. 그 사람 옆자리가 너무 좋아서, 아니면 참 밉지만 떠날 수가 없어서... 궁금하다. 할머니가 누군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자세히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는 어땠을까? 아버지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분들이 참 보고 싶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릴 정거장은 이미 지났다. 생각만으로도 사랑의 온기가 전해진 탓일까? 왠지 괜찮을 것 같다. 반대편 버스를 타도 되겠지만 걸어갈 수도 있겠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도 되는데 하차 벨을 누르고는 나도 꾹 서있었다. 할머니가 꽉 잡은 출구 앞 그 손잡이를 움켜잡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