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곧 월드컵 축구가 시작됩니다. 어디서든 축구 얘기가 넘칠 텐데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은 이상한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나도 축구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괜한 관심을 갖진 않으셨나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은 다가올 월드컵 축구에 애써 환호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2002년 월드컵 한국경기의 응원 풍경을 본 적이 있어요. 새삼 다시 보니까 대단하네요. 유족과 조문객으로 채워진 장례식장에서,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던 교회에서도, 조계사 절간에서도, 학술대회 현장에서도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을 합니다. ‘대-한-민-국’ 함성이 넘칩니다.
다가오는 한국 경기에서도 그렇겠죠? 대통령이 어디선가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이 TV에 나옵니다. 다음 장면으로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환호하며 경기를 봅니다. 시청광장에 응원객이 모여 있습니다. 늦은 밤까지 거실마다 불이 환하게 켜진 큰 아파트 단지도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텍스트지만 그런 모습이 서로 연결되면 텍스트간(intertextual) 사슬이 만들어집니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장면을 연결하면서 앞선 모습을 전제하거나 중요하다는 내용을 서로 인용해주는 셈이죠.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진지하게 축구경기를 응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자꾸만 그렇게 배치하면, 월드컵의 한국경기는 대한민국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는 효과가 만들어집니다. ‘진실’처럼 보이는 진실 효과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은 다음 날 경기 얘기를 자발적으로 합니다. 다섯 명 중에 세 명이 경기를 보지 않아도 월드컵 축구를 본 두 사람이 호들갑을 떨죠. 당신이 경기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야 너 월드컵 축구 안 봤어?”,“그것도 몰라?”,“너도 대한민국 국민이냐?”라며 훈계를 합니다. 경기가 있던 날, 혼자서 요가를 할 수도 있고, 만화나 보면서 한가롭게 쉴 수도 있는데 월드컵/한국/축구/승리에 관한 담론 유통자들이 당신을 가만 놔두지 않죠.
월드컵대회에 출전한 한국축구를 ‘결전의 자세로’ ‘환호하며’ ‘열광적으로’ 보는 태도, 품행, 입장, 상식이 만들어집니다. 그걸 월드컵 축구 담론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그런 담론이 한번 힘을 얻으면 다양한 목소리(텍스트)마저 모두 묶고 서로 전제하고 인용하면서 딴딴한 상식이 고정됩니다.
축구 담론이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배적인 담론은 권력이 되어 담론의 바깥에 위치한 당신을 배제하거나 차별할 수도 있어요. 월드컵 축구에 관한 지배적인 담론/권력은 축구 대신에 다른 공간을 선택한 (선택할 수밖에 없던) 차이와 다양성, 개인들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어요.
텍스트끼리 연결되고 인용하고 전제하면서 하나의 진실 효과가 만들어진다고 했죠. 그것이 지배적인 다수 집단의 신념이 되고, 점점 당연한 상식으로 유통되면,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조롱하고 비아냥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질서가 만들어지죠.
나는 진리의 효과를 만드는 텍스트의 전략적인 선택, 배치, 결속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판사들이 법이나 법의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법안의 법령을 함께 인용하고, 서로 참고하고, 자주 의존하면서, 소송에 관한 심판자로서의 권위를 만들고 유지하고 강화하는 겁니다.
미디어 텍스트를 통해, 학계의 연구문헌을 통해, 정부기관의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특정 텍스트를 선택하고, 어딘가에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반복적으로 인용하면서, 기득권력을 유지시키고, 혹은 특정 권력에 저항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과 글이 담긴 텍스트는 권력(지향성)을 함축하고 있고, 권력은 텍스트로부터 구성되고 재협상되죠.
달리 말하면, 이런저런 텍스트, 장르, 스타일을 개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즉 경쟁적인 담론을 허락하지 않고 특정한 이념을 담은 특정한 텍스트만 진짜라고 자꾸 전제하면, 권위주의, 반지성주의, 심지어 전체주의 사회가 싹틀 수 있어요.
거기서 우리는 얼마든지 무언가로부터 차별을 당할 수 있어요. 하나만 놓고 그걸 진짜라고, 혹은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 (그리고 나머지는 가짜거나 적의 음모라고) 계몽하고, 훈계하고, 담합하는 사회는 무서운 곳이죠.
권력이 교체되고,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되고,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려면, 민주적 절차를 지키며 유효한 수준까지 담론의 개입, 담론의 경쟁을 허락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질문과 논쟁이 허락되어야 하고요. 쌍방향 대화와 각자의 서사가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자기끼리만의 전제와 인용만 허락할 뿐 누구도 다른 방식으로 말과 글을 재편집하지 못하게 하는 곳은 위험한 권력이 자라는 곳입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겹쳐지지 않으면 위험한 권력이 창궐할 수 있어요.
다수가 축구를 좋아할 수 있죠. 그러나 축구에 관한 텍스트로 도배되는 "열광적인" 곳은 축구를 싫어하는 소수를 (혹은 다수조차) 너무나 당연하게 억압하게 됩니다. 당신과 나부터라도 지배적인 상식에 순복하며, ‘열광적인’ 무언가에만 미쳐 살지 맙시다. 거기엔 다양성과 자유의 가치는 그만큼 지켜지기 어렵거든요. 그런 점에서 당신은 월드컵 축구를 애써 좋아하지 않았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