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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May 30. 2021

freedom, love, languages 21

노아 감상평 2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영화 '노아'를 볼 때 한가지 더 흥미로운 상상을 했다. 사실 영화의 도입이 지루했던지 초반에 컴컴한 영화관에서 별별 생각을 다 한 듯하다. 


2. 역사언어학 분야로 강의도 하지 않았고 연구활동도 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 분야이긴 하다.그러나 '노아' 시대의 인간들이 영화 속 헐리웃 배우처럼 멋진 외모로 나름 멋지게 꾸민 옷차림으로 폼나게 얘기하진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고대 언어는 주연 배우인 러셀 크로우가 폼나게 말하는 형태와 거리가 멀다. 복잡한 감정과 분명한 의견을 전할 수준의 정교한 통사구조, 풍성한 어휘군이 없었을 것이다.     


2. 영화 속 대사를 보면 누구든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길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부연한다. 영화에서는 가족 관계에서, 혹은 적과 노아 사이에 나타나는 섬세한 감정이 묘사된다. 상황의 서술도 능숙하다. 현대언어를 사용해야 영화를 보는 관객이 이해하는 것이니 스크립을 그렇게 만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당시 언어사회에서 사용한 통사구조, 어휘, 음운 사용을 그래도 재현했다면 지금 시대의 우리는 소통 불능의 언어로 들릴 것이며 기호적 스타일링 역시 조악하게 보일 것이다.    

 

3. 감독이 노아 시절의 언어를 고대 언어로 들려주자고 작정하고 스타워즈의 요다의 통사구조처럼 나름 독특한 문법을 생성시켜달라고 언어학자들에게 부탁했다면 어땠을까? 배우들은 고대언어로 소통하고 관객은 현대언어로 옮겨진 내용을 커다란 스크린의 자막으로 본다. 할리웃 영화의 문법으로는 지루해보이기도 하지만 노아라는 바이블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자는 기획 과정에서 그러한 회의내용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4. 고전 라틴어는 문자언어로 계승이 되었기 때문에 로마제국 멸망 후에도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노아 시대의 언어는 대체 어떤 문자 기반의 언어가 사용되었을지 궁금하다. 언어의 보편적 체계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술적 소통의 체계가 매우 제한적이서 말의 양이 제한적이었고 대신에 표정, 몸짓, 공간적 배치나 기타 감각에 의존한 소통에 능숙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정교한 통사구조나 풍성한 어휘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비언어적인 발성이나 관용구 형태의 지시적 소통이 많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말의 속도나 차례 교환은 지금과 크게 다를바 없을 거란 생각도 든다.     


5. 물론 소통의 진정성은 문법적 정교함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노암 촘스키의 보편문법이나 스티븐 핑커의 '사고의 언어'에 따르면 고대 시대의 언어 역시 언어적으로는 보편적인 심층구조를 가졌거나 형태적 특성과 복잡성과 상관없이 인간이 느끼고 사고하는 만큼 누군가와 얼마든지 성공적으로 소통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문명사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6. 언어의 지역성이나 역사성과 상관 없이 신과 소통하고 인간끼리 (비)언어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은 보편적이거나 인지적인 독립성을 갖출 수 있다. 다만 신자본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의 형태와 스타일링과 비교해볼 때 '노아' 시대의 언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조악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할리웃 영화, 할리웃 배우가 노아 시대의 소통방식을 재현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참 어색해보인다. 마치 2살된 꼬마가 어른처럼 태연하게 말을 잘하는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까. 


7. 한국어는 어떤가? 고조선 시대의 구술언어는 어떠했을까? 고조선, 신라, 고려, 심지어 조선의 사람들과 만나면 (TV에선 가끔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단 1%의 언어학적 소통이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기호가 다르니 비언어적 메타 전략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다. 화용과 의미체계로 봐도 고대와 현대 언어는 외계인의 언어로 들릴 뿐이다.  


8. 언어는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미래의 언어는 어떻게 또 얼마나 변해갈까? 코로나 이후 억눌린 소비심리가 폭발할 것이라고 한다. 폭발은 소비심리만 아니다. 세계대전에 준하는 고통과 격리를 겪은 전 세계인은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와 세계화의 욕망을 드러낼 것이고, 새로운 공간의 배치와 복합적인 삶의 정체성을 수용할 것이다. 그들이 옮겨간 접촉지대에서 섞인 언어들은 반듯하고 예쁘기만 했던 현대화된 언어표준을 오염시킬 것이다. 생각보다 더욱 빠른 시간 안에 사람들은 관행적으로 수용했던 지배적-표준적-원어민-표준-현대-언어에 매혹되지 않을 것이다. 이주와 이동이 다시 시작되면 미디어에서 혼탁한 언어들을 더욱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9. 언어를 맥도날드화시키고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는 많다. 그러나 언어의 역동성과 인문적 가치를 주목하는 연구자는 사라지고 있다. 무인자동차와 백신 연구만큼이나, 도시계획에서든, 콘텐츠기획에서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언어민족성, 인간성의 등장을 예견할 수 있는 언어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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