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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Jun 02. 2021

자유 사랑 언어 5

마라톤 완주 후기

1. 글쟁이들은 관념의 열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하나 한순간에 겁쟁이가 되기도 한다. 글쟁이가 아니라도 사실 우리 중 다수는 관념의 노예이다. 예를 들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정복하려고 애를 쓴다. 시간의 정복자가 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한가로운 자신에 관대하지 못하고 관념적이나마 뒤처지는 걸 못 견딘다. 물론 그럼에도 몸과 일상을 다스리긴 쉽지 않다.    

 

2. 나는 글과 말을 통해, 말과 글에 관한 글쟁이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나도 지루한 일상과 작업이 반복되면 평정과 기력을 자주 잃는다. 그리고는 그럴 때마다 내 몸을 홀로 길 위에 올려 세우곤 한다. 등산을 하기도 했고 미국에선 달리기를 하곤 했다. 


3. 특히 삶을 달리기로 풀어 쓴 메타포를 좋아했다. 여러 차례 마라톤 대회에도 참석했다. 어느 심리학자인지 기억나지 않는데 대한민국 남성의 달리기 열풍을 자기기만적인 가학적 행위로 묘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만한 심리적 기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어렵다. 처음 달리기를 할 때 나도 성취 지향성이 내면화된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4. 그렇지만 내 내면만 살펴보더라도 달리기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원기를 길 위에서 일상적으로 소진하는 이유는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하고 또 다양하다. 슬프기도 하고 의연하기도 한 여러 에피소드가 넘친다. 일상의 지루함, 일의 압박감, 편협해진 관계, 건강의 위기, 돌파, 평화. 달리는 장소와 몸은 다른데 스토리의 주제는 풍성하고 이질적이다. 


5. 한국의 달리기 잡지/책/웹사이트는 달리기의 기술, 기록 등에 지면이 많이 할애되곤 하는데 나는 미국에서 읽었던 관련 잡지나 책의 한가로운 일화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보면 나는 아직도 달리기의 이미지만을 낭만화시키고 있는 초보 러너에 불과하기도 한 것 같다.     


6. 주말에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안식학기가 시작하면서 내 영혼이 활자체에만 고정되지 않기를 바랬다. 골프를 다시 할 수도 있었지만 달리기를 다시 선택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트레이닝은 충분히 하지 못했다. 대회를 앞두고 취소하긴 싫고, 그냥 하프까지만 천천히 달리자고 계획했다. 대회 전날 소파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다가 우연히 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렇게 말했다. 


7.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한다면 이건 그저 너를 위해서야.” 진심이지만 무모한 말을 건넸다. 아들은 씩 웃으며 날 포옹했다. 무슨 의미로 그 말을 했는지 포옹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대회 당일에 그 순간이 자꾸 눈에 밟혀서 하프를 지나서도 완주를 포기하지 못했다.     


8.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적은 있다. 하지만 트레이닝이 늘 부족했던 나는 20km까진 정상 속도, 30km까지 축처진 속도, 그리고 마지막 42km까지는 걷다, 달리기를 반복하다가 고작 5시간 안으로 완주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15km를 지나면서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프를 지나기도 전에 걸었다.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속 걸어야 했다. 교통 통제를 돕는 경찰이나 자원봉사자 모인 곳을 지날 때는 살짝 뛰었다. 그 때 걸으면 너무 민망하기 때문이다. 


9. 중년의 과체중 아시아인인 내가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보였는지, 그리고 후미에 쳐져서 포기하지 않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운지, 연도의 사람들이 ‘sir’이란 경어로 나를 응원한다. 그럴 때마다 한국 가서 염색을 다시 하리라 결심도 했다.    

 

10. 그러다가 '이왕 이렇게 늦은 것 차라리 즐겁게 완주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도로변의 집도 보고, 숲도 보고, 이런 저런 복접한 생각도 떠올리며 그냥 걸었다. 그리고는 거의 텅빈 스테디움의 Finish Line을 보고서는 조금 다시 뛰면서 6시간이 넘는 기록으로 통과했다. 자원봉사자도 거의 철수하고 대회장은 텅 비워져 있었다. ‘이럴거면 왜 뛰나’ 무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회 조직위에서 제공한 파스타와 피자 몇 조각을 입안에 쑤셔 넣으며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고나 할까, 아니, 난 아들과 약속을 지켰다고 위로했다.     


11. 다음 날 신문을 보니 남자 991명이 풀코스 완주를 했는데 내가 987등을 했다. 여자는 700명 정도 완주했는데 나보다 늦게 들어온 주자가 2명 있었다. 결국 전체 약 1700명 마라톤 주자 중에 꼴찌에서 7등을 한 셈이다. 내내 걸어오면서 대충 예상한 기록이긴 했다. 항상 꼴찌는 사진에 나오곤 하니까 차라리 꼴찌를 할까 생각도 사실 했었다. 그러나 스포츠맨쉽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는지, 아들 생각이 떠올랐는지, 나름 나는 최선(?)을 다했다.     


12. 집에서 쉬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무모한 모험은 없다고 가족에게 말하고 하루 종일 누워서 아이스크림, 소다, 달달한 빵을 흡입하며 (건강한 달리기 행사 참여 이후에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두 다리 펴고 쉬었다. 근육통이 와서 계속 더 쉬었다. 


13. 그런데 참으로 놀랍다. 하루 밤 자고 다음 날 교회를 가는데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꼴찌로 마라톤의 추억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정식으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생 글쟁이로 살거라면, 좀 더 쉽게 말해서 글로 잘난 척을 하며 살거라면, 길 위에 나를 세우는 일을 멈추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탁월하진 못해도... 글 만큼이나 내 몸 역시 좀 더 단련시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다스리지 못하는 글쟁이는 겁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과 함께 말이다.     


14. 까뮈와 동시대에 살았던 비주류도 주류도 아니었던 프랑스 작가 Henri Calet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 눈눞이에 맞춘 세상에서 일단 빠져나오게 되면... 길 위에서는 우린 이방인일 뿐이다.” (‘길 위의 먼지’ 고아침의 역서 중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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