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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Sep 17. 2021

언어와 권력 1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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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AT와 영어말하기에 관한 사교육 열풍이 심상치 않다. 외고 입시 변화로 한풀 꺾인 ‘시장 수요’는 NEAT를 통해 판세가 역전되었고 많은 학부모는 시간이 갈수록 불안하기만 하다. 교과부에선 공교육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라고 강조하지만, 수년 전 토플대란이 일어났을 때 2년 만에 토플 수준의 국제적인 시험을 만들겠다고 호언한 교과부를 쉽사리 믿을 순 없다. 단순히 시험에서 끝날 일이 아니란 걸 학부모들은 알고 있다. 내 아이가 지필시험에서 50점 맞는 것과 영어로 한마디도 못하고 바보처럼 앉아 있는 것과는 걱정의 차원이 다르다. 말하기교육을 위한 공적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이 되지 않은 상태이니 부모는 학원교육에 의지하게 된다. 이러한 때에 NEAT의 의사결정력을 높인다면 이미 시작된 사교육 대란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교육기업이 욕심을 줄였다면 국가가 시험판에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의 시대에 어찌 욕심을 쉽게 줄일 수 있었겠는가? 상품화시킬 수 있는 모든 공학적 매체를 동원하여 언어와 교육의 성취단위를 잘게 쪼개고 측정하고 관리하고 좀 더 잘해야 한다고 다그칠 때 효율성은 높아지고 수익은 더욱 확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변했으니 알아서 몸집을 줄이고 시간당 효율성은 떨어지더라도 사회적 가치, 언어적 생태성, 협력공동체, 혹은 분리된 지식보다는 통합적 사고를 고민하겠다는 사교육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가는 어깨 힘주고 주도하는 NEAT 사업에서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을까? 국가 주도의 교육과정, 교과서, 일제시험, 교사선발 등에 우린 매우 잘 길들여져 있지만 과연 5년 뒤도, 10년 뒤도 우린 영어를 배우고 시험 치루는 일을 국가가 주도하는 틀 안에서 반복하고 있을까? 만약 국가가 만든 시험이 시원치 않으면 어쩔건가? 애국주의에 호소할 것인가? 만약 그것이 통한다면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된 세계화, 자유무역, 다문화, 글로벌 기업은 또 뭔가? 무엇보다도 국가가 개입해서 새로운 일을 할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지금까지 보상받아온 일과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니 한동안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눈 가리고 귀 막은 바보가 아니라면 국가에게도 시장에게도 그저 순응적으로 우리가 누려야 하는 교육의 권리를 순진하게 양도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만약 시키는 대로 안 할거면 대안은 뭔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실천은 권한위임형, 민주주의 기반의 교육문화운동 밖에 없다. 누구든지 서로 맞서서 이긴 쪽으로 권한을 이양만 하면 새로운 지배질서만 만들어질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든 시간을 두고 서로 배우고 협력하면서 권한의 위임망을 확장하면서 국가와 시장의 이항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하고 있고,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해서야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배울 수 없다. 엄한 영어선생님이 가르치는 교실에선 즉흥적이고 의미협상적인 구술언어를 배울 수 없듯이 큰 시험 몇 개를 전 국민이 끙끙대며 준비하는 문화에서는 언어와 교육을 통한 다양성을 익힐 수 없다.


민주적 시험문화를 감당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꼭 필요하다. 우선 큰 시험의 힘을 더 빼야 한다. 수능 시험 때 기독인들이 교회에 모여 하루 종일 기도하게끔 하면 안된다. 얼마나 초조한 시험이면 시험 끝날 때까지 기도를 하는가? 한번의 시험에 힘을 실어주고 그것만으로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시험전통에 계속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또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목적에 맞게 꼭 필요한 작은 시험을 자치적으로 만들어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요구되지만 민주적 실천은 효율성과 비용에 따라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다. 이 일에 좀 더 헌신할 수 있는 정직한 전문가, 시민단체의 참여가 절실하다. 새로운 시험문화를 만들자고 하면 행정적으로 당장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기득권은 싫을 것이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가치로서의 교육, 언어의 공공성, 학습을 통한 공생의 사회를 꿈꾸자고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시장과 국가의 단순한 구호에 편승해서는 사교육대란의 복잡한 문제를 절대 풀어갈 수 없다.  


출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01031007


(2)


 MB정부가 추진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이 사업 타당성이 없음에도 불필요하게 국고를 지원했다는 감사원 지적이 나왔다. 2007년 토플대란의 처방은 ‘수입품’과 맞붙을 토종시험이었고 NEAT ‘신상품’을 만들기 위해 국비를 무모하게 지원하다가 NEAT대란까지 유도했다. 언론은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예산낭비, 졸속정책이라고 NEAT 정책의 책임자를 꾸짖고 있지만 사실 지난 수년 동안 바로 동일한 이유 때문에 NEAT 시행이 부추겨졌다. 


큰 시험을 또 다른 큰 시험으로 교체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정책만으로 교육개혁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언어를 가르치는 곳에선 더 그렇다. 언어는 인격적이다. 언어는 보편적인 규칙이 있지만 즉흥적이면서 유희적 속성도 있다. 무서운 아빠가 근엄하게 앉아 있는 식탁에서 말장난으로 낄낄대고 싶은 아이의 입은 열리지 않는다. 힘 센 시험이 버티고 있는 곳에선 언어의 창조성은 왜곡되며 언어로 존재하는 나는 위축된다. 세상에서 제일 싫지만 그래도 꼭 잘해야 하는 그 놈의 ‘영어’는 시험에 관한 최악의 순간만을 떠올린다. 해리포터를 졸도하게 하는 교도관 디멘터처럼 말이다. 


영어는 경쟁력이고 힘이고 돈이라고 한다. 그걸 알아도 고부담시험정책 앞에서 영어가 자꾸만 싫어지는 건 학습부진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자꾸 연필을 움켜쥘 뿐 입이 열리지 않고 문지기 언어는 너무나 진지해 보인다. 영어를 사용하고 배우기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복지나 권리의 관점에서 볼 수 없을까? 사람들은 경쟁사회에서 영어를 더 공부시켜야 하고 그래서 시험점수로 압박해야 아이들이 낙오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지나친 논리이다. 


정말 빈국이라면 음악도, 미술도, 외국어 학습도 모두 사치다. 그런데 좀 살만하면 그런 것도 공부시켜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런데 더 살만해지면 많은 사람들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도 악기를 연주하고, 운동팀에 참여하고, 외국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책을 구매하고, 동물도 보호한다. 성공의 기준은 바뀐다. 삶의 질이 보인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그저 수단이고 무기이고 또 한편으로 상품이고 권력이다. 그러나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는 언어는 곧 내 정체성이다. 재미가 되고 위로가 된다. 언어를 통해 치유하고 스토리로 다른 삶을 공감한다. 전지구적 공동체를 아름답게 탐색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회적 자원이 되기도 한다. 세계적인 경제강국이 된 한국은 여전히 외국어가 발톱이고 이빨이어야 하는가? 말을 공부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더 말랑말랑진다고 우린 가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더 잘 살수 있다.

   

NEAT는 이제 나쁜 시험으로 찍혔다. 그래서 그걸 폐기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이항대립도 그만 두자. 상황은 변할 것이다. 오용된 NEAT는 다시 선하게 해석될 수 있다. 시험을 앞세워 현장을 변화시키겠다는 고부담정책만 우선적으로 폐기하라. 영어시험에 힘을 너무 실어주지만 마라. 힘이 실리면 서둘러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영향력을 갖거나 수익모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입과 토종으로 대립시켜야 했고, 5년만에 토플 수준의 시험을 만든다고 호언해야 했고, 인터넷 강국이니 멀티미디어 기반으로 시험 시행이 가능하다고 장담했고, 수능을 대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수백억 쏟아 부으며 배운 교훈이라고 치고 이제부터 정신 차려라. 시험환경부터 보수적으로 운용해라. 근사하게 컴퓨터 앞에서 시험 치루지 않아도 된다. 시행보다 더 중요한 건 준비하는 학생이고 교사이다. 부모이고 자녀이다. 돈이 덜 들면서도 말하기-쓰기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누군가 우긴다면 그들은 장사꾼일 뿐이고 언어로 시험으로 그저 정치하는 사람들일게다. 그들을 더 이상 믿지 말아야 한다. 


출처:

https://www.khan.co.kr/opinion/public-opinion/article/20131011205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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