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페북을 10여년 전에 시작했고 당시 맺은 페친 다수와 교류가 끊어졌다. 그들은 나이도 많고 활동도 없다. 페북 피드에는 뉴스, 동물, 스포츠에 관한 영상이 많고 난 그걸 좀 보다가 포스팅을 하는 페친 글에 ‘like’를 누르기도 하고 잠시 그렇게 머물다 곧장 퇴장했다.
2. 페북을 떠나지 못한 중요한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국내외 흩어진 우리 가족은 오래 전부터 페북 메신저로만 소통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페북을 했다. 그래서 가족과 메신저를 주고받거나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포스팅을 할 때가 많았다.
3. 하지만 또 한편으로 페북은 내게 고난했던 삶의 흔적을 남긴 일기장이었다. 우정을 나눈 페친이 많지도 않지만 소수의 독자라도 있어서 좋았다.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내면을 드러내면서도 세상을 지켜보는, 나만의 글을 남기는게 불편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으면 심심하고, 보는 눈이 많으면 내가 쓴 글을 놓고 검열을 할 것 같으니 지금 페친 규모는 내게 적정 수준이었다.
4. 그런데 보름 전쯤인가 수업 준비가 너무 지루해서 페북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흥미로운 포스팅을 읽었다. 그리곤 링크를 타고 옮겨가며 정말 많은 분의 페북 글을 봤다. 다 모르는 분들이지만 능숙하게 글을 남기고, 공감하고, 주장하고, 수시로 연합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5. 텍스트 분량도 많고 활동 폭이 넓어서 팔로워도 수천명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사람들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누구와도 리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음악, 요리, 건강, 출판, 정치, 뭐든간에 그들은 경계를 넘으면서 유쾌하게 자신들이 붙든 신념과 가치를 텍스트로 전했다.
6. 그들의 열의는 내게 곧장 전염되었다. 내게 페북은 오래 살던 집 앞 골목길과 같은 곳인데 나는 갑자기 드넓고 붐비는 8차선 강남역 사거리로 내몰린 느낌이었다. 나는 여러 학문 분야의 경계를 넘으며 연구문헌을 만드는 학제적 연구자로 자처하는데 (나만큼 하는 사람은 내 주위 교수로부터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들의 지적 횡단은 내 수준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쾌하고 유쾌하고 유연해 보였다.
7. 모르는 사람에게 페친 신청을 하지 않는 나는 어떤 이끌림으로 그들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그리곤 그참에 개나 고양이 수준의 영상을 내 피드로 전해주는 사이트들을 여럿 끊었다. 만난 적도 없지만 열의 가득한 낯선 그들의 글이 내 피드에 가득 채워졌다. 요즘 페북을 열면 낯설다. 그렇지만 그들의 글은 매력적이다. 활기가 넘친다. 나도 뭐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8. 그러나 고작 보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난 결코 그들처럼 온라인 활동을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막연하게 나도 그들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글을 바라보니 내 삶의 고유함을 새삼 깨닫는다.
9. 그들은 수많은 텍스트로부터 삶의 흔적을 남기고 그것으로 자신의 일상을 역동적으로 구성한다. 능숙하게 성벽 넘어로 화살을 쏘아 올리는 용맹스러운 공격수로 보인다. 붙들고 있는 가치와 신념이 선명하다. 주위에 사람도 많고 바빠 보인다.
10. 그들이 부럽다. 그렇지만 다행히 나는 그들처럼 될 수 없어서 그들이 부럽지 않다. 그런 공세적인 삶의 양식을 난 도무지 쫓을 수 없다. 이건 나이 문제도 아니고 현장성의 문제도 아니다. 내게 허락된 내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획득해야 하는 지금과 다른 상황, 예를 들면 3040 나이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처럼 지내지 못할 것 같다. 난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내향적이고 신중한, 수비수의 삶이 잘 맞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왜 MBTI 검사에서 ENTP가 자꾸 나올까?)
11. 내향적 캐릭터라고 분주하고 역동적인 (온라인) 활동을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토록 수많은 텍스트를 밖으로 쏘아올릴 배짱이 없다. 장담컨대 난 유명해지지도 못한다. 내 안의 그릇이 계속 깨지고 작아져서 그만한 텍스트를 담아둘 배짱도, 여유도, 관계도, 욕망도 소멸되었다. 다행히 나는 그걸 빨리 알아채고 새로운 삶의 의례를 만들고 있다. 일에 관한 내 소망은 '작더라도 딴딴한 학자'로 버티기만 하는 것이다. 붙들고 있는 전문성과 윤리, 가치와 신념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12. 요즘도 늦은 오후엔 숲길을 걷는다. 일주일에 여러 차례 교회 소모임이 저녁에 있다. 그것만 해도 한 주가 잘 지나간다. 내년 가을학기에 안식학기를 얻을 것이고 내년까지라도 이렇게 잘 지내고 싶다. 아니 이렇게라도 버티고 싶다.
13. 일주일 중에 가장 좋은 때는 자연 가까이서 시간을 보낼 때이다. 몇 시간이고 걸으며 심신이 지치게 되면 몸이나 감정에서 어떤 여백을 느끼곤 하는데 그때가 분주하거나 고통받은 자아가 조금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이 그만큼 채워지는 순간이란 느낌을 받곤 한다.
14. 아침에 큐티 하는 시간도 너무 좋다. 단톡방에서 큐티를 나누다가 가끔 편한 사람과 얘기도 한다. 좋아하는 신앙서적도 매일 읽는다. 그러다가 아침 시간은 그럭저럭 지나간다. 느슨하게 초고를 만들어둔 학술문헌 작업이 계속 미뤄진다. 그래도 늦은 오후 트랙킹 시간처럼 아침 시간이 너무나 고요하고 그래서 그때마다 행복하다. 하루 중에 당혹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다음날 아침만 오길 기다린다. 아침에 큐티하면서 커피 마실 생각만 해도 회복력이 생긴다.
15. 속사람이 더 딴딴해지고 싶다. 나는 상처를 입고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기적처럼 다시 살아내고 있다.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도, 내가 어떤 일을 열의를 갖는 것도, 새로운 기회가 다시 오는 것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할 일은 피하지만 말고 그저 버티고 바라보는 것이다. 두렵지만 두려움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거기 하나님이 자유와 평화를 보여주실 것이다.
16. 이런 존재성으로는 페북에서 메시처럼 드리블을 할 수가 없다. 페북의 글쓰기는 그저 소그룹 앞에서 시낭송을 하는 느낌이면 충분하다. 페북의 글은 내가 세상에 가끔 보내는 러브레터이다. 소수의 독자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들이 있으니 그나마 뭔가 쓰고 나눌 수 있다. 아마도 이런 걸 ‘창조적 긴장’이라고 부르나 보다.
17. 이제 트래킹할 시간이다. 참 별것도 없는 시간이다. 스틱에 의존하며 계속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잠시 쉬면서 아내와 함께 사과를 하나 베어 문다. 실없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웃다가 다시 일어나 걷는다.
18. 가끔 무릎이 뻐근해지거나 몸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이렇게 즉각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렇게 속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런 순간마다 내 영혼이 조금씩 소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분명 든다.
19. 이걸 아내에게 말하면 아내는 쿨하게 갱년기 증상일 뿐이라고 화답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나도 오바할 마음은 없다. 그래도 갱년의 지점을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 성취와 소유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는다. 예전엔 그것만 두고 기도했다. 지금은 하나님의 영을 구하며 기도한다. 교회를 30년 다녔지만 마태복음 6:33-34 말씀이 이처럼 잘 이해된 적이 없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