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일 Oct 03. 2022

집으로 가는 길 4

청년 갈렙의 꿈

1. 청년 갈렙은 분명 울보였을 것이다. 


2. 모세의 명을 받고 가나안을 정탐한 갈렙은 여호수와와 함께 그곳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는 믿음을 확증한다. 물론 성경에서는 갈렙이 울보로 등장하지 않으며 청년이라기보다 노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 기백 넘친 청년의 심장을 가졌을 터이며 그런 이유로 울보였을 것이다.


3. 올림픽 방송을 보면 몇 년 동안 대회를 준비하면서 결전의 날만 기다려 온 선수들의 인터뷰 장면이 있다. 담담한 표정이지만 그들은 진짜 마음은 어떨까. 정신력이 강한 것과 무관하게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표정이다. 특히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도쿄 올림픽이 1년 미뤄졌을 때 대회 참가가 예정된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니 내 마음도 짠해졌다.


4. 최선을 다하며 기다린 그들의 서사는 늘 감동이다. 대회를 기다리면서 운다. 이겨도 운다. 져도 운다. 얼마나 기도하고, 꿈을 꾸고, 환상에 기대며 소망하고, 열심을 다해 준비했을까? 다른 길이 보이지도 않은 간절함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5. 너무 간절한데, 될 듯, 안될 듯, 그럴 때가 참 많다. 결과가 나오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초조함을 이겨낼 마땅한 방법도 없다. 꿈을 꾸면서 담담하게 히루를 지낼 뿐.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견디고 시합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본 사람은 그렇게 우는 걸 보기만 해도 같이 운다. 운동선수 출신 해설자나 감독도 그렇게 경기를 지켜보며 눈물이 난다.


6. 심지어 자격은 모자라지만 (그래서 대회를 나가지 못하거나) 그럼에도 감히 꿈을 갖고 다시 도전하거나, 혹은 꿈쟁이가 되기엔 너무 평범하거나 평균에서 모자란 사람도 운다. 안될 줄 알면서 도전할 때가 있다. 실패를 예감하더라도 멈출 수 없다. 그런 사람도 다 운다.


7. 꿈쟁이들은 속상해서 울기도 한다. 자신의 꿈을 나누었을 때 폄하하고 깐죽대는 다수/주위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사람들은 좀처럼 칭찬과 인정에 관대하지 않다. 우리 주위엔 돕고 격려하기는 커녕 냉소적으로 깐족대는 사람들이 더 많다. 


8. 한 울타리에서조차 우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창세기 37:19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꿈을 꾸는 요셉에게 이렇게 비아냥댄다: "저기 꿈쟁이가 온다." 


9. 참 못난 놈들이지만 마땅히 그들을 피할 방안도 없다. 어디 잠시 조용한 곳에 기도하러 갔다가 마음을 다잡고 돌아올 수 밖에. 꿈을 꾸고 그걸 말하는 순간 우린 은따를 당할 수 있다. 꿈을 꾸고 소망하며 새로운 삶의 궤적을 준비한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10. 갈렙의 소망은 다수에게 발칙하고 황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갈렙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는 45년 동안 약속을 붙잡고 꿈을 꾼 사람이다. 4년짜리 대회를 기다려도 눈물샘이 감당 못할 만큼 고이는데 45년을 품은 꿈이 어찌 가슴에 고여있을 수만 있었을까? 눈물이 흘러 내리고, 다시 꿈을 꾸고, 또 눈물이 나고 그렇게 견디었으리라. 


11. 갈렙은 꿈을 감당할 만큼 딴딴하게 준비했을 것이다. 오만하거나 허망한 꿈이었다면 가나안 사람을 보고 자신은 그저 메뚜기 같다고 낙심만 했을 터이다. 믿음도 없고 꿈도 없다면 (전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크게 성취한 현재 시점조차도) 우린 늘 메뚜기처럼 세상을 보고 또 우리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12. 감당할 만한 것을 붙들고 기도하는 간절함을 놓고 기복적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가 기복적이라고 비난한다. 나부터도 복을 구하며 청년을 버틴 것 같다. 폄하하거나 말거나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었다. 그것이 아니곤 온전히 의지할 만한 누구도 아무것도 없었다. 꿈꾸고 기도하며 환상을 보며 버틴 시간이었다. 


13. 갈렙의 소망을 품은 분들을 응원한다. 지금은 꿈꿀 세상이 아니라는 고통과 호소를 이해한다. 꿈꾸기엔 세상이 너무 녹녹치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꿈꾸는 자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설레인다. 이사야 32:8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14. 나는 이제 갈렙처럼 노장이 되어간다. 그렇지만 청년의 심장을 품은 갈렙처럼 살고싶다. 내가 발휘할 수 있는 확장과 능동의 끝이 보일 때가 있다. 그렇지만 소유와 성취와 상관없이 믿음의 눈으로 존귀한 일을 붙들며 사는 존귀한 삶을 평생 살고 싶다.  


15. 물론 갈렙의 기다림처럼, 꼼짝도 할 수 없을 때라면 너무 애쓰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승리해도 실패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때라면 슬패해도 승리가 된다. 요한복음 15:5에 이런 구절이 있다. "Yes,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16. 어쩌면 내 망칙함과 무력함의 자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기다릴 기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기쁜 삶을 살수 있다. 이기면 좋고, 실패해도 하나님과 함께 한 존귀한 삶을 선택한 것이니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다.


17. 오늘 내 기도는 이렇다: "하나님, 진짜 항복. 당신의 계획 말고는 기댈 무엇도, 어디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요함 중이라도 갈렙의 인내와 기백으로 오늘 하루를 흘러 보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집으로 가는 길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