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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Oct 21. 2022

집으로 가는 길 5

웃음과 침묵에 관해

1.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일상은 이런 것이다. 우리 가족은 여행길에 오르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둔 식사 시간에 누군가 대표로 기도한다. 근엄하게 기도를 하는데 유쾌한 웃음이 넘친다. 웃어야 할 별 이유는 없다.


2. 예를 들면, 아들이 기도를 하는데 딸이 눈을 뜨고 멍하니 듣는 모습을 아내가 슬쩍 보고선 웃음을 겨우 참는다. 그걸 본 딸이 먼저 낄낄 소리를 댄다. 그럼 서로 실눈을 뜨고 상황을 보다가 웃음 소리가 겹쳐진다. 결국 기도도 뭐고 한바탕 모두 크게 웃기만 하다 대충 기도는 끝난다.


3. 성의가 없는 기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영혼의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닐까? 친밀하고 신뢰하는 관계에서 기도하면서 동시에 크게 웃는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의 모습을 축복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4. 나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믿는다.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놀이터이다. 기쁠 땐 마음껏 웃으며 기뻐야 한다.


5. 심지어 눈물이 날 때조차 마음 한켠에 언제든 다시 춤을 출 수 있을 기쁨이 딴딴하게 내재되면 좋겠다. 기뻐할 수 있다면 영혼이 무겁지만 않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살면서 누리는 큰 축복이다.


6. 한없이 진중하기만 한 도덕주의적 신앙은 일 얘기만 하는 직장 상사가 화를 내며 차려준 만찬이나 다름 없다. 소박한 저녁상이라도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귀한가.


7. 거창하고 추상적인 얘기만으로는 기쁨도 진실도 없다. 거긴 침묵하고 싶을 때 침묵할 자유도 없겠지만 마음 편히 웃을 기회도 없다.     


8. 대학에서 두 과목을 가르치고 일주일마다 몇 차례 교회 모임이 있다. 회의가 가끔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디서든 좀처럼 크게 웃을 일이 없다. 내 유머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지만 유머로 장착된 말을 찾기도 어렵다.


9. 나는 조금 더 친밀하고 따뜻하게 말을 나누고 유쾌하게 함께 웃을 곳을 고 싶다. 내년에 안식학기를 가서 영육간의 강건함뿐 아니라 내 낡은 유머감각에 기름부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성을 진심으로 소망한다.  


10. 지난 주말에 카카오톡이 터지지 않아 난리가 났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아내와 보내는 평화로운 일상이 참 감사하다.


11. 어떤 분들은 하루만 카톡을 하지 않아도 수십개, 수백개의 메시지가 쌓인다고 한다. 그런 분들은 운동을 할 때도, 둘레길에서 걸을 때도 무언가를 전송하고, 음악이나 뉴스이든 들어야 한다.


12. 그런데 중단 없는 소음을 그렇게 붙들고 산다면 도무지 영혼의 안식은 어떻게 구할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함에 어떻게 민감할 수 있을까?


13. 그들에게 침묵은 ‘중단되는 것’, ‘어색한 것’, '지루한 것', ‘죽어버리는 것’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내게 침묵은 그 반대이다. 침묵은 쉼이다.


14. 침묵은 생명을 소생하게 하고 새롭게 소망하게 한다. 영혼의 안식, 삶의 주체성은 침묵이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15. 아무리 생각해도 소음과 분주함을 숭배하지 않는 건 내가 참 잘 선택한 결정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참 아쉬운 점이 있다. 큰 소리로 웃을 상황이 계속 사라진다는 것이다.


16.  영적인 삶이 아직 낯설어서 그런지 영혼의 안식이나 자연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참 좋지만 기쁨과 큰 웃음이 어떻게 겹쳐질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17. 주위 사람들 단점을 깔보며 같이 웃자는 사람들은 늘 있다. 남을 조롱할 정도이니 잘난 사람들은 분명할 터이나 그런 분들과 함께 누군가를 비웃긴 싫다.


18. 그럴 바엔 여전히 침묵의 시간을 선택하고 영혼의 평화를 우선 만끽하고 싶다. 그렇다고 분리되고 고립된 삶만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19. 나는 선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내면과 관계를 여전히 소망한다. 마치 연애와 결혼만이 다급한 목적이 되어서 누구와든 아무렇게나 교제하기를 거절하는,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기대하고 준비하면서도 현재성에 충실한 예비신부들처럼 말이다.      


20. 웃음을 선택하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책을 보거나 뭘 쓰면서 찡그리면 웃을 일이 자꾸 사라진다.


21. 일은 지금처럼 줄인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성취와 소유에 왜곡된 의미를 부여하면 안된다. 시간을 정해두고 일한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조금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22. 골프를 다시 칠 준비를 하다가 몇 번 웃었다. 그런 것처럼 새롭게 뭘 시작할 때도 웃음이 예비된다. 웃음에 인색하지 않은 내면과 관계를 놓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23.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로마서 8:6)이라고 했다. 로마서 8장을 읽으면서 내리막이라도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첫번째 문을 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침묵의 일상으로부터 받은 선물 같다.


24. 이제 기쁨과 웃음이 넘치는 두번째 문이 열리면 된다. 서로 연결된 문이지만 다른 문이다. 저기 내가 가서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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