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영성이다
1. 오랜만에 글 남깁니다. 저에게 글(언어)은 내면과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이 아닙니다. 저는 언어를 선택/배치하면서 제 삶의 기억과 기대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런 글쓰기를 전과 같이 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2.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읽고 쓰는 행위는 만만치 않은 노동입니다. 저는 아마도 그렇게 언어를 붙들고 세상을 바라보던 에너지를 영적인 일상 혹은 내면의 평안을 위해 전환한 듯합니다.
3. 로마서 성경공부를 포함해서 이번 학기 모든 교회 소모임이 종강.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한 리츄얼에 관심을 더 둘 것이고 온라인 공간이나 분주한 일정보다 홀로 묵상하고 자연-친화적인 활동에 시간을 많이 쓸 것 같습니다.
4. 교회 모임이 종강하자마자 미국에 있는 아들이 오랜만에 잠깐 방문했습니다.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습관이 영성이다’ 책을 읽었는데요.. 의례와 예전의 삶을 살아가려는 제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252쪽 비행기의 안전 대피 요령에 관한 지침으로부터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응급 상황에서 옆자리 이웃을 도우려면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5. 그런데 몸은 금방 좋아지진 않네요. 익숙했던 헬스장에서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는 유혹도 느끼지만.. 분주하고도 소란스런 곳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습니다. 저만의 방식으로 훈련과 섭생을 계속할 것이고 무릎이 괜찮을 때까지 숲길을 더 걸을 것입니다. 어제부터 추워진 날씨에 과연 한겨울에도 트래킹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따뜻한 방한복 구해보고 눈길에서도 걸을까 합니다.
6. 앞서 언급한 ‘습관이 영성이다’ 책에서 제가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새로운 왕국으로 옮겨가는 것은 다른 영토로 순간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습관을 획득해야 한다” (108쪽). “하나님의 영은 번개같은 마법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적 습관을 징집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신다” (107쪽).
7. 안식과 갱생을 위한 시간은 제가 뭔가를 새롭게 소유하기 위한 수단이나 무기가 아닙니다. 이렇게만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냥 이대로 은퇴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해도 되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예전에 초고로 만들어 둔 것이 많으니 그걸로 필요한 연구업적을 당분간 채워나갈 계획입니다.
8. 저는 내리막의 삶을 직시하고 청년 때부터 저를 붙든 환상과는 전혀 다른 삶의 의례를 준비하는 듯합니다. 지난 몇 년이 제 인생의 새로운 분기점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삶을 나눌 수 있는 의연하고도 기쁜 인격적인 관계를 소망합니다. 슬로우 라이프로부터 자족함, 여전히 풍성한 기쁨을 누리며 사는 분들은 놀랍게도 별로 없어요.
9. 과시하는 규모의 삶보다 소수 사람들과 서로 사랑하고 헌신할 수 있어 감사하고 또 자족합니다. 12월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고 연초를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궁금합니다. 교회 소모임이 봄에 개시될 때까지 수요일 밤마다 저녁예배를 다닐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