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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Dec 25. 2022

집으로 가는 길 7

"because it's Christmas."

1. '인생에 한번쯤 킬리만자로' 프로그램은 5800m 킬리만자로산에 등반하는 배우와 가수의 여행 서사다. 등반대의 막내는 걸그룹 멤버였던 효정인데 국내에서 산행 경험이 많아 대장 역할을 맡았다.


2. 어제 방송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날 여정을 보여준다. 효정은 (늘 낙관적이었지만) 고산병 증세와 몸의 통증으로 속상하기도 하고 실패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그렇게 몇번 주저 앉다가 눈물 닦고 일어나 천천히 다시 걸어가면서 울음을 멈춰가며 씩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정말 너무 예뻤다. 빛이 나는 얼굴이었다.


3. 마침 어제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님의 신간 '방황의 시대 방향이 되다' 소개도 기사로 읽었다. 거기 이런 내용이 인용된다.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아니라 어둠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4. 내 주위 많은 분들이.. 내가 전심을 다해 가르친 지도학생들이 거의 모두 중단하고 낙망하고 고통받고 있다. 그들 마음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나도 무력해지고 힘들다.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들도 눈물 닦고 씩 웃으며 담대하게 다시 걸어갈 수 있을까? 나와 함께 나누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디서든 누구와도 말이다.


5. 세상의 기준이라면 그들은 꿈을 꾸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들은 대단한 배경도 권력도 없었지만 그저 가슴 설레는 꿈을 품은 청년들이었다. 근데 그들은 꿈을 꾼 이유로 지금 혼이 나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 또 그들이 주저앉은 걸 보고 기다렸다는 듯이 비아냥댈 것이다.


6. 그래도.. 자꾸 그 자리에서만 아파하고 울 수만도 없다. 킬리만자로산에서도 그랬다. 자책만 하다간 감정도 몸도 꽁꽁 얼어 붙을 수 있다. 숨을 쉬고 있다면 계속 호흡하며 어디로든 몸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


7. 생명의 하나님은 어둠을 통해서도 일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난 그걸 믿는다. 그걸 믿는다면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생긴다. 돌아보면 정말 괜찮기도 했다. 세상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아니다. 오늘 성탄절 예배에서 그런 생각을 다시 했다. '나부터라도 눈물 닦고 다시 천천히 걸어가자.'


7. 그들도 지금 멈춰 있지만.. 삶의 존귀함만은 지켜지면 좋겠다. 너무 힘들면 하루씩만 계속 버틸 수 있는 힘이 마치 광야의 만나처럼 허락되면 좋겠다. 자존심이 상해서 손을 내밀지도 못할테니 누가 알아서 그들의 손을 덮석 잡아주면 좋겠다.


8. 난 아내를 제외하곤 각별하게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별로 없다. 누구 눈치도 크게 보지 않고 묵묵하게 내가 할 일을 감당하며 성실하게 버티는 삶만 살았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말 감사하게도 30년 동안 아주 각별하게 지낸 (오늘 생일인) 베프가 있었다. 고향이 베들레헴인데 나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친구가 많다. 인싸인 것같지만 무시도 자주 당해서 아프고 힘든게 뭔지 잘 안다. 오늘도 연락했다. 내가 감당할 몫을 감당하며 의연하고 기쁘게 살겠다고 말했다.


9. 그 친구에게 하는 내 얘기는 늘 둘로 요약된다. 하나는 내 힘으로는 평안이 없다는 무능의 고백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는 삶이 이제라도 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소망이다.


10. 멈춰선 모두 내 베프를 다시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너무 속상하지만 말자. 자꾸 뒤돌아보지 말자. 그럼 못 일어선다. 눈물 닦자. 폼나게 웃자. 함께 조금만 같이 걸어보자.


11. 오늘은 크리스마스니까.. 생명과 소망이 그들에게도 내게도 차고 넘치기를. 'because it's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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