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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Feb 11. 2023

집으로 가는 길 8

개강을 앞두고

1. 회색 셔츠만 입는 최고경영자 마크 저크버그는 '입고 먹는 사소한 결정도 삶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라 자신은 생활을 단순화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2. SNS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삶의 에너지를 동원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저는 호흡하고 살아가는 힘을 최대한 아끼려는 듯합니다. 먹고, 입고, 살아가는 방식이 갈수록 검소해지지만 점차 익숙해집니다.


3. 그래도 페북 대신에 몇몇 카톡방에서 글도 나눴고, 1월부터는 트위터에 QT 글도 올립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QT라고 부릅니다.) 혹시 크리스쳔이시고 하나님 말씀으로 일상을 버티고 회복하는 분이라면 초대합니다. https://twitter.com/DongilJacobShin 


4. 올해 제 기도제목 중 하나가, 맑든 흐리든, 냉소와 궁핍을 이겨내며 씩씩하게 매일 아침 묵상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5. 아침에 QT하고 단톡방에서 교회 일도 논의하면 시간이 훌쩍 지나고.. 몇 시간 정도 일을 하고는 오후에 대개 걷고 운동도 혼자서 합니다.


6. 너무 추운 날씨엔 헬스장에 다시 가고 싶었지만  북적대고 소란스러운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저만의 소박한 문화 코드를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가식을 멀리하고 불필요한 동선을 계속 줄일 입니다.


7. 올해 제가 살아가는 일상의 미학은 역시 걷기, 아침 커피와 QT, 읽기와 쓰기, 강아지와 고양이 정도입니다.


8. 특별히 지난 몇년 동안 위로와 여유를 깐돌과 제니로부터 얻었습니다. 열정적이고 충성하는 삶의 태도를 지닌 강아지와 능청스럽고 냉담하기만 한 고양이를 함께 보고 있으면 모노톤의 제 일상에 그나마 옅은 색채가 입혀집니다.


9. 저는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더 좋습니다. 세상과 관계에 길들여지지 않은 듯, 마치 자신이 집주인인 듯 행세하는, 그러나 가끔씩 먼저 다가와서 빤히 바라보고는 몸을 비비는, 매혹적인 기품과 최소한의 예의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네요.  


10. 올 겨울에 문서 스캔도 많이 했습니다. 자꾸 혼자서 해보겠다며 책상에 쌓아둔 연구자료들은 (제게 허락된 연구자원으로부터 패배를 인정하고) 아쉽지만 전자파일로 옮겨 두었습니다.


11. 다시 만나지도 못할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지만, 기분이 다운되면 전수연의 피아노곡을 들었습니다. 뭐랄까 어떤 희망의 감각이 깨워져서 올 겨울에 자주 들었습니다.


12. 올해 여름부터 제가 안식학기를 얻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있는 미국으로 갈것 같습니다. 어딜 가도 소박하게 지낼 것입니다. 강아지와 고양이와 같이 가기 힘든데 그게 고민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6개월 비우는 것도 애매합니다.


13. 안식학기를 위해 그런저런 결정도 해야 하고, 올해 상반기는 ‘좀 활기차게 지내자’, 그런 생각도 합니다. 묵혀둔 논문과 단행본 원고를 그냥 세상에 내보내자는 생각도 합니다. 아무튼 올해는 일을 좀 하려고 합니다.


14. 제가 아는 교수님이 은퇴를 하는데 연구실을 비워야 하는 바로 전날에 서재를 정리하다가 저를 보시고는 몇 권의 책을 주셨어요. 감사하긴 한데요 너무 오래된 책이었고 소장할 가치도 없는 문헌들이었습니다.


15. 그분도 몰랐을까요? 아셨겠죠. 그냥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죠. 그래도 용기를 내고 혜안을 구하며 버릴 만큼 또 버리고, 물러서야 한다면 또 물러서고, 대신에 현재성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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