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동일 Jan 18. 2024

freedom, love, languages 43

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것 (1)

아래 글은 수정 및 편집 과정을 거쳐 2024년 2월에 출간된 다음 단행본 원고에 포함되었습니다: '버티는 힘, 언어의 힘' (신동일 저, 서울: 필로소픽)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28266


1.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하고 배치하는 언어와 기호의 총합이기도 합니다. 나만의 자아정체성은 내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기호로 만들어진 존재성이기도 합니다. 누구라도 언어와 기호를 통해서만 표현됩니다. 철학자이자 심리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모든 의미작용이 주체의 위치성을 얼마든지 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2. 달리 말하면, 우리의 삶이 분주하고 탐욕에 가득 차 있다면 우리가 선택한 언어, 우리가 살고 있는 기호경관도 그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소박하지만 강건한 삶을 구한다면 그만한 생각을 유지시킬 언어와 기호가 자꾸 드러날 것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뿐 아니라 매일 입는 옷, 헤어스타일, 선호하는 제품 브랜드, 살고 있거나 즐겨 찾는 공간의 기호에도 드러날 것입니다.


3. 나는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리스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삶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자연스럽게 내가 사용하는 언어, 내 주위에 배치된 기호도 미니멀리스트라는 정체성에 맞추어 달라졌습니다. 특히 팬데믹 시대에는 한적하게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내가 무슨 기호적 레파토리를 붙들고 살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4. 예를 들면, 연구실 구석에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 DVD가 쌓여 있었어요. <이알(ER)>, <죽은 시인의 사회>, <홀랜드 오퍼스>, <패밀리 맨>, <페어런트 트랩>. 모두 다시 보지도 않으면서 그걸 버리기는커녕 눈에 보이는 연구실 구석에 왜 배치해 두었을까요? 영화 표지를 살펴보니 멋진 남편, 자상한 아빠, 친절한 선생님, 영웅적 서사로 살아가는 남성성의) 관념이 연상되었습니다.


5. 그런 기억과 욕망이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그걸 붙들고 집착하는 만큼 나는 현재성에 집중하지 못하며 새롭게 이동할 수 있는 미래적 공간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동하거나 달라질 수도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로 계속 살 수밖에 없죠. 그러나 자아정체성은 평생 단일하지도 않고 영구적일 수 없습니다. 뜻밖의 질병이나 사고로 신체의 고통을 겪기만 해도 이전에 나였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거창하기만 했던 자아는 한 방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6.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눈으로 직접 만끽하지 못하고 스마트폰 화면으로 그걸 내내 찍기에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메라에 저장된 풍경을 얼마나 자주 꺼내어 볼까요? 나는 긴 세월 동안 집착했던 표지와 장면 속 기호들로부터 이상화된 나만의 자아를 엄중하게 직면했습니다. 이젠 ‘지금 여기’ 존재하고 살아가는 현재성에 더욱 전념하고 싶었습니다.      


7. 망설였습니다. 그걸 모두 버리고 싶은데 지금까지 붙들고 살아온 내 역사를 버리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샷 추가해서 쓴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아몬드를 깨작깨작 먹으면서 창밖을 멍하니 또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모두 버렸습니다. DVD뿐 아니라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며 구매한 이상한 스타일의 옷, 묵혀둔 옛날 일기장이나 수첩, 중고 전자제품까지 정리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버리지 않아도 언젠가 한 번에 누군가로부터 폐기될 물건으로 보였습니다.      


8. 버리지 않고 어디 놔두면 어땠을까요? 그럼 세월이 또 흘러 문득 창고에서, 혹은 서랍장에서 마치 보물처럼 그걸 발견하고선 다가갈 만한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말을 걸겠죠. 감상에 젖어서, 혹은 으스대면서 그런 물건의 역사에 대해 과장하겠죠. 아무도 몰라주면 혼자서 와인 한잔을 마시며 상념에 빠질 수도 있겠고요.      


9. 그렇지만 내 기억과 일상의 공간에 그런 기호들까지 모두 저장해둘 여유가 이젠 없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팬데믹 시대에는 동선조차 제한되었잖아요. 나는 담백하고 소박하고 살고 싶었어요. 용량 초과의 표지는 내 삶의 여러 지표에서 이미 드러났거든요. 마치 상징체계처럼 붙들고 있는 기호들은 내 내면의 문지기와 같아서 지금 더욱 기쁘게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나 일상의 활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그걸 모두 버린 만큼 자유롭게 뛰어놀 내면과 일상의 여백이 더 커진 셈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집으로 가는 길 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