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 막히는 조직이 싫다
나는 숨 막히는 조직이 싫었다. 사실 고등학생, 아니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나는 조직생활에 잘 맞는 인재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에게 예의 바르고 뭐든 계획을 짜서 완벽하게 하려는 나의 성향은 내가 기업이라는 조직에 들어갔을 때 가장 큰 메리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 모든 것보다 내가 가장 중점을 두는 가치는 ‘공정함’, ‘정의’라는 것을. 내가 다니는 회사는 대기업이고,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한다. 협업을 해야할 때도 있고, 서로 경쟁을 해야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 회사에 와서 느낀 건(사실 어느 회사나 이런 부분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항상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소위 말하는 정치질을 잘하는 사람들, 싸바싸바를 잘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윗분들의 예쁨을 받으며 고과를 챙기고 승진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넌더리가 났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이 조직에서 나는 거의 막내였는데(대부분의 동료가 우리 부모님뻘이었다),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 뒷말하는 사람들이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넘쳐났다. 이런 직장에서 20대로서 살아남아야 하는 나에게는 끝없는 회의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이런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렇게까지 몇년을 공부했나? 라는 의문이 머리 속을 가득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를 거의 2년째 다니면서 내가 느낀 점은, 나는 정말 딱딱하고, 공정하지 못한 꼰대 기업이 안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꼰대 집단이 누가 맞겠냐 싶겠지만, 업무 강도가 낮기에 꼰대 문화 정도는 견딜 수 있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다른 것에 가치를 둔 것이지. 하지만 나는 정말 숨막히는 이 집단에서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시도들을 반복했다. 상,하반기 가리지 않고 이직 준비를 했고, 프리랜서의 길도 알아보고자 해보지 않은 것들을 조금씩 해보았다. 쉽지않았다.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심지어 사람이 많아서 무조건 서서 가야한다)은 날 너무 지치게 했고, 건강을 나빠지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눈 앞에 검은 점이 하나 보이더니, 그게 늘어나 이젠 5개 정도가 되었다. 안과에 가보니 ‘비문증’이란다. 경미한 공황장애도 겪었고, 생전 걸리지 않던 감기도 일년에 3~4번씩 걸리는가 하면, 살이 입사 전보다 5~6키로나 빠졌다.(덕분에 예뻐지긴 했다.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준비하는 언론사에선 서류는 합격해도 필기에서 떨어지기 일쑤였고(공부를 하지 못하니), 가끔은 서류에서도 떨어지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런데도 나는 그만두지 못했다. 내년에 결혼을 해야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리고 지금 당장 이직이 어려우니까 나는 계속 다니고 있는 것이다. 처음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여전히 무례한 직장동료들의 얼굴을 매일 보며 일해야한다. 오늘도 막무가내 과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았다. 도대체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할까. 그래서 요새는 지금 당장 탈출하지 못한다면 집이라도 가까워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동희망서까지 작성해 보려고 하고 있다.
숨 막히는 조직이 싫다. 그런데 어느 곳보다도 내 목을 죄어오는 꼰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도 참 아이러니하다.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날 수 있겠지라는 아주 작은 희망을 매일 품으면서 오늘도 출근하고, 내일도 출근한다. 나도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 지 알 수가 없다. 외교관을 꿈꾸고 참된 언론인이 되려는 노력을 하다, 이젠 유통기업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모습이라니! 누가 내 미래를 알고 있다면 나에게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