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일리치의 죽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정말 큰일났다. 적어도 내가 본 우리 세상은 큰일났다. 우리는 진짜 중요한 건 보지 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보여주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의 잘 사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는 삶. 이런 일은 한국인이라면 어릴때부터 많이 겪었을거다. 반에선 최대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어야해.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왔더니 얼른 취직을 하란다. 대학은 배움의 장소가 아니던가..? 문과에선 경영학과, 경제학과를 전공하지 못하면 대기업에선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어, 적성에도 맞지 않는데 경영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인문학, 철학과 같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인생 전반의 교훈들은 취업이 안된다는 이유로 우리의 우선순위 뒤로 밀려난다.(가끔은 아예 버려진다) 취직을 하고 나니,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하고싶은 것을 하기보단 해야하는 것을 한다. 그 후엔 결혼을 해야하고 아이를 키워야하고, 노후준비를 해야한다.
물론 그런 삶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우린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 들기보단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약 2년 가량 편도 1시간 30분의 출근을 해보니, 지하철 한 칸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또 요새 결혼 준비를 하는 내가 가장 이해되지 않는 건 하객알바를 쓰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거다. 친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축하를 받아도, 그래도 그 사람의 가치는 깎이지 않는다. 소수의 진정한 친구만 있어도 그 사람의 인간관계는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남들한테 보여지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니까 굳이 돈을 들여 보여지는 삶을 산다.
그런데 보여주면, 그 다음은 뭘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거? 그 다음은..?
보여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 인생에 집중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는거다. 명품백이 없어도, 결혼식에 진정한 친구가 몇명만 와서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줘도, 공부를 못해도 하고싶은 걸 하며 살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힘을 주고, 임산부에게 좌석을 양보하고, 핸드폰보다는 책을 가까이 하는. 요새는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그런 삶이,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도 남들 눈치를 많이 보고 보여지는 삶을 동경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책을 가까이 하면서 깨달았다. 아! 진짜 중요한 건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가고싶은지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구나. 거의 서른살이 되어서야 그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고 나니, 지금까지 살아왔던 하루들이 조금 후회가 됐다. 학창시절에 좀 더 젊었던 부모님과 시간을 더 보낼걸(공부한답시고 문 닫고 혼자 지냈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동생과 조금 더 친해질걸. 내 10대, 20대를 함께해준 사랑스러운 나의 강아지 행복이와 조금 더 산책을 많이할걸. 대학교와서 핸드폰을 보던 시간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걸. 내 인생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숙고하고 어떻게 살지 생각해볼걸.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제 고작 서른인거다. 나의 가족에게 더 잘하고, 지금 함께있는 강아지인 만두와 산책을 더 많이 하고, 친구들 한명한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예비신랑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따뜻하게 보는 사람이 될 날이 50년 넘게 남은거다. 어쩌면 난 남들보다 일찍 깨달은 거다.
그래서 난, 어느샌가부터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여질지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기보단 내가 하고싶은 걸 꾸준히 찾고, 내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다. 비록 지금 직장이 맘에 안들지라도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며 항상 모든 초첨을 나에게 온 힘을 다해 맞춰가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제대로된 과정이라면 결말도 행복할 거란걸 알기에..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는 다른 결말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