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큰 방황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숨도 못 쉬고 좁은 통로를 기어가는 기분이다. 이 곳은 좁고 컴컴한 통로만 있을 뿐,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퀘퀘하고 쿰쿰함 냄새, 보이지 않는 암흑 속, 다 까진 무릎까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그런 길을 나는 외로이 가고있다.
나는 곧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두려 한다. 적어도 1년 안에 이 곳을 떠나려 한다. 컴컴한 통로를 혼자 기어다니다 몸이 상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해지기 전에 얼른 떠나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2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했고, 짜증 한 번 안내고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큼은 모두 해냈다. 여전히 그러고 있지만, 나는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이 회사는 나에게 내가 가진 가치만큼의 대우를 못해주고 있구나. 남자 동기들에겐 모두 주는 표창장을 이 회사는 어떻게든 나에게는 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일을 안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을 거다. 내가 속한 부서의 부장님은 “요직은 원래 남자가 맡아야 한다.“라는 말을 감히 한다. 이런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더 버틸 수 있을까? 적어도 할 일 열심히 하고, 농땡이 피우지 않는 직원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게 정상적인 회사가 아닐까?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지금의 회사를 다니면서 자존감이 너무 깎였고, 내 가치를 내가 낮게 판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 내 가치는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적어도 취직 전엔 난 알고 있었다. 매일매일 내 인생을 갉아먹는 이 회사를 나는 오래다닐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누군가의 평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무언가를 만들고, 쓰고, 주체적으로 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건 정말 자신이 있다. 나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래서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글 쓰는 거, 글 읽는 걸 난 정말 좋아하고 여전히 평생 할 수 있는 걸 꼽으라면 자신있게 그걸 꼽을 것 같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누군가의 평가를 계속 받아야 했고, 시키는대로만 해야했으며, 창작할 수 없는 틀에 박힌 일을 해야했고, 업무와 관련없는 사적인 문제를 들먹이는 상사를 상대해야 했다. 누군가는 이런 직장이 잘 맞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다른 쪽으로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사람인데, 굳이 안되는 거, 안 맞는 것에 나를 맞추며 스스로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
2024년 12월의 첫 월요일, 이젠 나도 꽁꽁 숨겨둔 내 날개를 펼쳐보려 한다.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게 쉽진 않겠지, 적성에 맞는다고 해도 힘든 일들이 많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일한 것에 대한 어떤 대우도 못 받고, 좋아하지도 않는(심지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보단 행복할 것 같다. 일이 많고 연봉이 좀 더 낮아도 괜찮니?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너무 당연하게 “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나에게 그렇게까지 큰 가치는 아니었다. 내 자아를 실현하는 것, 그게 나에게 가장 큰 가치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거다. 그렇게 결심했다. 오늘, 지금, 당장.
언젠가 좋은 날이 오겠지. 하고싶는 일을 하면서 사는 날이 오겠지. 남들이 깎아내린 반짝거리는 내 가치를 나는 똑바로 마주하고, 그 소중한 것을 내 품 속에 꼭 껴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