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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물결 속 눈부신 여정

르 클레지오 | 황금물고기

by 블루베리 햄스터

탁한 회색빛 물결 아래 반짝이는 금빛 물고기. 이 책을 읽을수록 내 머릿속 이미지로 떠올랐던 한 장면이다. 제목이 왜 ‘황금물고기’일까, 라는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어느새 나도 그 황금물고기의 고되고도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하고 있었다.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책엔 직접 ‘자신’을 찾아가는 라일라의 삶이 스며들어있다. 인신매매를 당해 어느 집으로 팔려오고, 라일라를 손에 넣으려는 수많은 검은 시도들에도 라일라는 굴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를 둘러싼 현실과 사회라는 탁한 회색빛 물결 안에서도 라일라는 자신을 찾아내 숨겨져 있던,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물고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읽으면서 ‘역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라일라를 착취하고 학대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다. 이런 모습이 왜 역하다고 느꼈을까 생각을 해보니, 우리 주위, 우리 사회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설에서 표현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직접적으로 역겨운 모습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나이가 들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일들과 사람들을 겪었다. 상식을 벗어난 사람들부터 무례한 사람들, 사람을 쉽게 무시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다보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내가 혐오하는 부류의 사람들의 모습을 내가 닮게 될까봐 가끔은 두렵다는 거다. 그런면에서 라일라가 처한 상황들, 즉, 내 표현으로 하자면 탁한 회색빛 물결 속에서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라일라가 자아를 잃지 않고 끝내 빛났던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우리만의 황금비닐을 빛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은 누구도 없고, 모두 다 자기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자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물론 그것이 제일 어렵다. 인생을 그렇게 오래 살아본 건 아니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정말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운 것 같다. 사회에 던져진 우리들을 잠시 멈춰서 바라봐도 그렇다. 누구보다 귀한 아이로 태어나서 마음껏 사랑받다가 어느날 눈을 떴더니 냉혹한 사회에 나와서 혼자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하는 그런 상황. 심지어 그 길은 자갈밭, 넝쿨이 한 웅큼 드리워진 가시밭이고 가끔은 맹수의 습격을 받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삶에서 누군가는 스스로를 포기하고 악한 길로 들어서고, 꼼수를 쓸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직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소설 데미안,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말했듯이 결국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길을 정직하고, 선하게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길이 포장된 도로가 아닐지라도, 지나가다보면 꽃도 피어있고, 따스한 햇살도 맞으며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는 포근한 길. 열심히 헤엄쳤던 라일라처럼 우리도 탁한 물결 속에서 끊임없이 길을 찾다보면 맑은 물에서 마침내 우리의 진짜 빛깔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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