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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에 잡은 낯선 이의 손

그 손에 가시가 박힌지도 모르고

by 블루베리 햄스터

난 항상 꿈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엔 피아니스트,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시절까진 변함없이 외교관이라는 꿈을 꾸어왔다.


고등학교 3학년, 생각보다 낮게 나온 수능 점수에 재수를 선택했고, 정말 독하게 혼자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중고등학생때 마음속에 품어온 외교관이라는 꿈이 막연하고 희미해진 듯하다. “꿈이 뭐야?”라는 말에 “외교관이야.”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사실 어떤 노력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대학교에 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노는 게 즐거웠을 뿐. 그렇게 그럭저럭 평범한 학점을 받으며 대학교 3-4학년도 지나갔다. 스페인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학교 활동도 하며, 친구들이 이중전공으로 경영학과, 경제학과를 선택할 때 나는 굳게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냥 더 재밌어 보여서. 취직이 아니라 당연히 시험을 봐서 나라를 위해 일할 줄 알았다. 하지만 4학년이 돼 가는 시점 외교관 시험은 너무 큰 벽처럼 여겨졌고, 차선책으로 외무영사직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친구도 만나지 않고, 부모님과 시간도 못 보내고 공부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 내 나이 27이었다.


그땐 친구들이 차츰차츰 사회인이 돼 가거나, 이미 되었던 시기였다. 친구들이 예쁘게 화장하고 사원증을 메고 다닐 때, 머리 질끈 묶고 아침 7시에 독서실에 가던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노력하면 되겠지, 재수 때처럼 하면 당연히 될 거야.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과녁을 비껴갔고, 20대 후반을 향해 달리는 나는 그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시험을 포기하고 기업에 취업할 준비를 하게 된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언론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발로 뛰어가며 취재하는 기자들이 멋졌고, 무엇보다 글 쓰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최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향적인 성격이 걱정이긴 했지만 그 시절엔 뭐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언론사 준비를 시작했고, 불안감에 간간히 대기업에 서류도 넣었다. 금융권은 성향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았기에 유통 쪽으로 지원을 했다. 사실 붙어도 갈 생각이 없었다. 관심이 아예 없는 분야이기도 했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러던 중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유통기업에서 필기시험 합격 연락이 왔고, 면접 준비를 3일 정도 간단히 한 후에 면접을 보러 갔다.(사실 면접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그런데 결과는 최종합격.

그렇게 고군분투하고 울며 공부하던, 내 꿈이었던 외교부 입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 같았는데, 이 기업은 내 생각엔 나를 쉽게 뽑았다.(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가야 하나? 입사포기하고 언론사 준비를 해야 하나?


20대 후반, 친구들은 모두 취직했는데 나는 아니라는 불안감, 그리고 다른 기업에 합격할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함은 내가 ‘입사 포기’라는 선택지를 감히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후회하게 될 선택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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