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얼마전 스마트 오피스니 뭐니 하면서 기존의 사무실 레이아웃을 다 뜯어고쳤다. 책걸상이 스터디룸에 있을법한 흰색 세트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리마다 전자명패가 있어서 인터넷 키오스크에서 자리를 예약했을 때 해당 자리를 예약한 사람 이름으로 바뀐다.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은 1999년생 24살의 어린 아이이다. 신입사원에게 이렇게 키오스크로 예약을 하면 전자명패에 예약자 이름이 뜬다고 알려주었다. 입사한 회사의 모든게 신기할 신입사원은 신나서 자기도 예약 해보겠다며 키오스크에 로그인을 하고 자리를 예약했다. 얼마 후에 신입사원 자리의 명패에 직급과 이름이 표시가 되었는데, "매니저 홍길동"이 아닌 "파견직 홍길동"으로 표시가 되었다.
우리 회사는 얼마전 직급 체계를 개편했다. 급여는 속에 들어있는 전통적인 직급, 그러니까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기준으로 지급이 되지만 밖에서 부를 때는 다 같이 매니저다. 그래서 누가 대리인지 과장인지 모르고 승진을 했는지도 모르고 누가 우리회사 계약직인지 정규직인지 파견직인지도 모르는 것이 정상 상태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는 지점 들에서 이런 직원들의 내밀한 근로계약 관계가 모든 직원들에게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파견직 홍길동 이라는 글자가 명패에 떴을 때 나는 너무 민망하고 당황해서 당장 어디에 얘기해서 바꿔야겠다고 황급히얘기를 했다.
혹시 나만 좀 민감하게 생각하는 걸까 싶어 케이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니 미친거 아니냐고 했다. 나만 민감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 사내 포털에 업무제안을 등록했다. 처음에 썼던 제안 내용은 거의 여직원 노조 위원장 출마의 변 스럽게 작성이 되어 구구절절한 내용은 다 빼고 건조하게 작성해서 등록했다.
회사가 요즘 자꾸 수평적이니 스마트니 조직문화를 껍데기만 바꾸려고 별 짓들을 다 하는데 이렇게 말단 직원들을 2년 쓰고 소모해버릴 속셈으로 파견직으로 채용하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나 지배구조 등은 1도 안 바뀌는데 오히려 더 반감만 커지는 것 같다.
제안 올린 것도 언제 반영해줄건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