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
2006년 첫 재봉틀 구매 후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봉틀을 돌리며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나름대로 꾸준히 만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만드는 것들이 100% 완벽하지는 않다. 여전히 바늘땀 고르게 직선을 이루지 못하고 약간씩은 삐뚤빼뚤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완벽주의자는 아니라 “헤헤헤” 웃어 넘긴다. “뭐 어때. 어차피 내가 쓸 건데, 내가 입을 건데.” 지금은 나 혼자만의 취미가 아니라 재봉틀을 배우는 여러 수강생을 가르쳐 드리고 있지만, 이 성향이 어디 가지를 않는다. “뭐 어때요. 조금 이상하면 다시 뜯으면 되죠. 괜찮으시면 그 정도는 안보여요.”라고 말씀드린다. 처음엔 완벽주의자였던 분들이 이상하게도 강사에게 동화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판단불가다.)
아무튼 나름대로 오랜 재봉틀 돌리기의 역사를 갑자기 번뜩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똑같지만 뭔가 다른 그것이다.
“무엇이 똑같을까~?♬ 앞치마 디자인이 똑같아요.♪”
그렇다. 분명 같은 디자인의 앞치마이다. 다른 점은 각각 2011년, 2022년에 만들었다는 점이다. 11년의 간극……찾을 수 있을까?
2011년 첫 아이를 임신 중이던 시절에 만들었던 지금 보면 어설픈 앞치마. 이 앞치마의 정식명칭은 ‘숏 스퀘어 앞치마’이다. 숏은 짧다는 뜻이고, 스퀘어는 목 부분이 사각 형태라는 뜻이다. 즉 길이가 짧으며 목 부분이 네모난 이 앞치마를 만나게 된 건 어쩌다 당첨된 이벤트에서 받은 *DIY KIT 덕분이었다. 기분 좋게 받아 든 이벤트 상품인데 막상 펼쳐보니 눈앞이 막막했다. 설명서가 있긴 한데,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갔다. 그 때 그 어려움이 지금의 나의 초보 수강생들이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묘한 동질감이 들기까지 하는군. 아무튼 이벤트당첨 후기는 남겨야 했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서를 보고 또 보고, 나름의 주관적인 해석까지 더해서 어쨌든 완성해냈다. 그리고 무척 뿌듯해 했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오, 처음인데 잘했군. 역시 난 잘해.”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더해졌었다. 심지어 이 앞치마는 당시 막 결혼 한 친구에게 신혼선물로 증정까지 했으니, 앗 갑자기 너무나도 미안해진다. 이제라도 사실을 고백해야 할까?
사실 2022년에 다시 만들면서 알게 되었다. ‘어머나, 나 저렇게 만들었던 거야? 나 뭐 한거지?’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허허허”하며 너털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엉망으로 처리된 몸판의 바이어스가 정말 압권이다. *인바이어스로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을, 그 당시 설명서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멋대로 그냥 일반 바이어스 처리를 해버려서 뭔가 어색했던 것이란 걸 이제야 깨닫다니! 이번에는 인바이어스로 아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인바이어스도 제대로 처리할 줄 아는 *봉틀러니까! 비록 너털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던 부끄러운 과거지만, 그런 과거들이 나에게 쌓여있기에 지금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재봉틀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앞치마 비교체험 극과 극.
완벽한 직선을 위해 애썼다면 그 속에 있는 즐거움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완벽함은 살짝 내려두었더니 지금까지 나는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것, 그 뿐 인 것 같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면 그것은 보너스. 여러 가지 보너스를 내게 안겨 준 재봉틀이 있기에 오늘도 즐겁고 행복하다.
*DIY KIT : 원단과 패턴, 부자재가 들어있어 간편히 만들 수 있도록 제공된 패키지를 말한다.
*인바이어스 : 시접을 처리할 때 원단으로 감싸는 바이어스처리 기법 중 하나로 바이어스가 겉에서는 보이지 않게 하여 깔끔하게 처리하는 방법이다.
*봉틀러 : 재봉틀과 원단, 부자재를 이용해 만들기를 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재)봉틀 + -er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접미사) 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