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에 넘버링을 붙이고 나니, 하루 한 권 꼴로 책을 읽고 있다. 이 수준으로 2020년 내내 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올해는 읽는 것에 조금 더 많이 집중하고 싶다.
ㅡㅡ 하루 종일 같은 영상을 또 보고, 또 보고 하는 덕질에 미쳐있다가, 밤이 되니 뭔가 양치질 안 하고 잠을 청하는 것 같은 불편함이 올라온다. 애써 뭐라도 읽어야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겠다 싶어서 들은 책이 이 책이다. 그제 동네책방에서 건져 온 책인데, 딱 그 책방지기만이 들여다 놓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덕분에 나도 내 취향에 딱 맞는 책을 건져왔고, 읽었다. 얇아서 단숨에 읽을 것 같았다만 그건 아니더라. 제법 중간중간에 쉬었고, 밑줄 그어가면서 뭔가 머물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가 쓴 책인데, 아무렴 쉽게 후루룩 넘어가겠나.
-책은 대화이다. 책은 대화의 특징을 이데아에다 부여한다(본문, 21p).
-책은 말 걸기 혹은 부름이다(본문, 21p).
-독서는 큰길로 내려와 운행한다. 도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매 순간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어지럼증을 애써 잊으려 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본문, 32p).
-편집자는 책의 불가독성을 이미 읽은 사람이다. 편집자는 책보다는 저자와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다(본문, 41p).
-책을 펼쳐야 한다. 열기와 닫기의 유희를 흔들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주체로서의 책은 독서의 대상이 되어 진정한 힘을 얻는다(본문, 49p).
-서점에서 독자는 읽지 않는다. 맛보고 들이마시고 냄새를 맡고 핣는다(본문, 53p).
-서점은 책이 가지고 있는 관계를 풀어주고, 숨을 돌리게 두었다가, 잠시 몸을 흔들어대는 것, 책이 가진 충족성과 정합성을 소실하는 것이다(본문, 54~55p).
-만지기만 해도 책은 독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본문, 55p).
-책은 사유라는 약속을 지니는 재료의 단위이다(본문, 64p).
-책은 우리의 사유이다. 진지하면서도 덧없는 사유, 손 닿는 곳에 있으면서도 비밀에 가린 사유, 우리가 끈질기게 공유하는 사유가 바로 거래 자체이자 자유이다(본문, 64~65p).
: 딱, 서점과 책에 대한 단상이다. 그 흐름 안에서 사유의 거래는 결국 각자 개인의 몫인데. 나는 여전히 영상보다 텍스트가 주는 힘이 더 크다. 말로 던져지는 것들은 한계가 있고, 영상이 주는 재미는 간헐적이다. 영상을 보면서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으나, 내가 책을 읽으면서는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딱 책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게 나에게는 매력으로 온다. 나에게 그. 나. 마. 책 읽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힘을 준 것, 그것은 감사할 축복이다.
내가 책을 왜 읽지? 내가 서점에는 왜 가지? 하는 서성거림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얇은데 생각거리는 많다. 이 책 집어올 수 있게, 그 서점에 배치한 책방지기에 무한감사를 하며... 여하튼 읽었음에, 읽고 있음에 대한 영역 표시를 여기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