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외로움

나를 파악하기는 너무 힘들어

by 동메달톡

외로움


양준일이 한국으로 돌아와 시중 일관 집중하는 주제가 있다. ‘외로움’인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는 있지만 많이들 외롭게 보인다고. 그래서 외로움에 대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사람들 외로움의 골수는 무엇인지, 무엇으로 외로움을 극복들 하고 있는지, 그런 과정들을 음악에 담고 싶다, 고 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운가? 여럿이 같이 있으면 외로운가?


내 경우는 참 희한하게도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다. 오히려 여럿이 같이 있으면 외롭다. 이런 상황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혼자 있으면 놀 수 있는 것이 천지이다. 멍하게 하늘 쳐다보는 것, 두꺼운 책을 읽었다 덮었다 하는 것, sns 순례를 하면서 글을 쓰는 것, 음악소리 높여 두고 어설픈 춤을 추는 것, 거울보고 미친 듯이 웃어보는 것,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보는 것, 모두 즐겁고 재미있다.


여럿이 있으면 일단 남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데 그 주제들이 다행히 같은 결이면 다행인데 그러지 않으면 이미 머릿속은 허공을 돈다. 머릿속이 허공을 돌고 있음을 애써 눈치 채지 않게 가끔은 웃어도 줘야 하고, 고개도 끄덕여야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순간을 스스로 인지하게 되면 겁나게 외롭다. 이럴 때 외로움은 뼛속까지 치고 들어와서 더 허허롭다.


가끔씩 이야기하는 양준일의 외로움이 이런 것이 아닐까. 동상이몽을 느끼고 체득한다면 그 외로움은 골수까지 갈 것 같다. 사람들 중에 양준일이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몇 년 안 되더구먼, 어릴 때는 부자였더구먼 뭘 그렇게 고생했다고 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양준일의 어려움은 그런 경제적인 것이 아니고 ‘외로움’이었다고 본다. 어릴 때 누나와 동생은 학업 지향적 형제들이었고, 자신은 문화지향적 아이였으니 부모에게서 받는 인정 지수가 달랐을 것이다. 그때 느꼈을 외로움. 백인이 많은 서구 사회에서 피부색이 달라서 순간순간 생각했을 정체성에 대한 혼란의 외로움. 한국 사회에 돌아와 음악을 하면서 받았던 문화 차이의 외로움. 사람과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 술을 먹어야 친해지고, 서열을 따져서 형님, 동생 하는 관계의 해법들, 이런 것들이 골수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라고 했다. 이 말을 어릴 때 선배에게서 들었을 때는 단순히 멋지다, 뭐 그런 느낌이었다면 나이 들수록 저 말은 사무친다.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은 나를 버리고, 상대에게 맞추어야 하는 태도의 본능일 수도 있고, 스스로 어떤 틀에 가두어 버리는 일종의 고문 일 수도 있는 것이니 '고독한 군중(데이비드 리스먼 책 제목)'은 도처에 있다는 생각이다.


코로나 19로 세상은 사회적 거리 두기, 로 다시 외로움을 호소한다. 답답하다, 우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코로나 창궐하는 이 시기에 그 자리에 꾹 머물러 있어라, 하는 서로서로 경계의 눈도 많다. 내 경우는 경제 문제가 제일 큰일이기는 하지만, 나름 외롭지 않은 일상을 조금씩 만끽하고 있다. 원 없이 읽고, 원 없이 듣고, 원 없이 쓰는 것을 할 수 있음이 사실은 참 좋으나, 그 넘의 밥벌이 향연에 대한 걱정은 외로움이 아닌 무서움을 동반하기는 한다. 그럼에도 외롭지 않게 잘 견디고 버티고 있다.

우리들 시대의 ‘외로움’은 진짜로 무엇일까. 양준일 씨를 만나면 그 외로움에 대하여 물어봐야겠다. 내가 상상한 외로움의 결이 맞냐고.

음악으로 나눌 그의 외로움은 또 무엇일까.


해가 떨어지길 기다려 음악이 흐르면서 뜨거워
떠나가고 싶은 괴로움 눈을 감으면 난 날아가
뛰어가고 싶은 곳이야 따라가고 싶었었던 꿈이야
왠지 나는 익숙해 알 수가 없는 나의 외로움
내 맘을 이해하려고는 하지 마
나를 파악하기는 너무 힘들어

-V2(양준일), 3집 Fantasy, 외로움 가사 중에서 일부-
프리즘 북이오에 정기칼럼으로 기고된 글입니다.
https://prism.buk.io/102.0.2.169?t=g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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