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티게 한 노래, 엘튼 존

by 동메달톡

음악과 책. 그게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챙기고 버티게 해 준 것의 팔 할이 책이고, 음악이었다.


음악은 종합예술이라고 누가 그랬다.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음악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음악이 주는 힘은 책이 주는 힘만큼 강했다. 다만 음악도서관이 우리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책만큼 접근이 확장되어 있지는 않았다.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으로 한정해서 들어야 하고 방송국에 엽서 열 번 보내면 내가 원하는 곡 겨우 한 번 들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서, 책만큼 원 없이 즐기지는 못 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FM 개국도 지방이라 늦어서, 늦게 접했다마는 참 위로가 되었던 것이 음악이었다. 반면 책은 원 없이 봤다. 도서관이 있어서 혹은 서점에 죽치고 앉아서, 원 없이 봤다. 이런 물리적 혜택 덕분에 책이 더 큰 치유의 도구인 줄 알고 살았으나, 조금 더 찐하게 들여다보면 음악도 책만큼의 무게감을 주기는 했구나, 싶다.


며칠 전 지인의 공주 시골집에서 들었던 재즈가 참 영롱했다. “분위기가 굿이다”는 의견에 “음악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하는 무심한 말이 정말 공감되었다. 음악이 그런 것이다. 장르 상관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냥 음악 돌려두면 무한 위로를 받는 시간, 그런 자유에의 시간이 참 행복하다.



배철수 잼에서 리베카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부르는 양준일, 이미지 출처 mbc 배철수 잼

며칠 째 앨튼 존의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에 빠져있다. 이 곡은 내 중학생 때 참 많이 들었던 곡이다. 사실 그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으나 피아노 선율에 맞춘 앨튼 존의 목소리가 너무 슬펐다. 그 목소리 따라 스며드는 그 감성이 너무 슬퍼서 울며 잠든 적도 있었다.



'와러 바이 가 로더 투메이큐 럽미
(what have I got to do to make you love me)'


영어를 한글로 받아쓰면서, 이렇게 웅얼거리며 그 시절 팝송을 즐겼다. 한글의 받아쓰기 팝송이 아닌 영어 가사로 이해하며 다시 들었을 때, 이 곡이 원래 슬픈 곡이었구나,를 인지하면서 또 꺼이꺼이 울었다. 왜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그리 나던지.


양준일 님이 이 곡을 좋아하고, 이 곡이 힐링곡이라고 하니 새삼 놀라웠다. 너무 슬퍼서 좋아한다고. 이런 비슷한 결들을 애써 찾은 것도 아닌데 툭툭 쏟아져 나올 때, 내 덕질은 운명(?)이구나,라고 또 갖다 붙인다. 시절 음악을 앨범의 낡은 사진처럼 꺼내보는 것, 행복하다. 앨튼 존 노래를 다시 주닐님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살아있음에 대한 존재 확인을 한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버티고 견디어 왔다.


나를 버티게 하는 음악 한 곡, 여러분도 그거 있나요? 그 음악, 오늘은 원 없이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굿 럭!!




프리즘 북이오 정기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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