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일기, 재미있고 감동이다. 시집의 반격이다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아이들 교육학적 임상결과가 나온다고
내 또래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아이들 교육학적 임상결과가 나온다고. 이십 년동안 부모가 아이에게 쏟은 물질적, 관습적, 정서적 인 풋들이 아웃 풋 되어 나오는 임상결과를 담담히 지켜보는 시기들이 아이가 스무 살 넘어가는 그 즈음이라고.
이런 임상결과에 딱 맞물리는 시집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왔다. 아이가 아빠 사랑을 정말 많이 받고 자랐구나, 그리고 그 사랑을 아이가 스무 살 되면서 느끼고 알고 있구나. 이거 축복이잖아. 이 사랑을 기억하면 이 녀석은 뭐든 잘 하고 살겠구나, 하는. 시집을 한 숨에 읽고는 마지막에 아이(정현우, 대학교 2학년)가 쓴 발문을 몇 줄 읽고는 뭐야, 이 친구는 뭐 이래 글을 잘 써. 대학교 2학년 남자아이 감성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넘치잖아. 어 글빨도 있네, 이거 뭐지? 했는데. 문예창작과 학생이란다. 그래 그 아이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되어 있더라.
시집이다. 그런데 한 편의 서사를 엮은 졸졸하게 읽히는 산문집 같다
그래, 시집이다. 그런데 한 편의 서사를 엮은 졸졸하게 읽히는 산문집 같다. 글이 산문처럼 투박하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학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아이의 학창시절 스토리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져 있다.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고, 아이가 야간 자습을 싫어하고, 담임이 불러 아빠가 학교로 가려다 그 이유가 점심 시간에 축구를 해서 땀이 많이 나 주변에 냄새 민폐를 입혀서, 축구공을 담임이 가져 간 모양, 그것을 찾기 위해서 아이가 교무실에서 축구공 달라고 소리 질러서 아빠를 불렀다는 소리를 듣고 학교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전개는 거의 빵 터지게 했다. 나도 그런 적 있었거든. 내 아이의 학교 생활과 확 교차되는 그 지점이 있어서 웃고, 또 웃었다. 발문에 아이도 '축구공은 무죄' 그 시에 언급을 했더라.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를 고민하는 이 땅의 부모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를 고민하는 이 땅의 부모에게 권하고 싶다. 엄마든 아빠든 상관없지만. 한 부모 가정이 아니면 아빠가 좀 더 마음을 담아서 읽으면 좋을 시집이다. 한 권 사서 쇼파에 앉아서 삼십 분에서 한 시간 투자하면 든든한 보약 한 첩 먹은 것 마음이 담길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낯설음이라 해도 아빠가 꾸준히 지속적으로 아이를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그 정성이 아이와의 공감대를 만든다. 그 관찰자 역할이 지적질이 아닌, 그냥 그렇게 던지듯 담담하게 그렇게 영글고 섞이는 것이다 싶다. 부모가 그런 거잖아. 수업시간에 소설책을 들키지 않고 읽으려면 이런 방법도 있다나 엄마에게는 안비밀(?)로 용돈을 가불 해 주는 것이나. 이런 소소함들이 묶여서 기억되고 추억되어 아이도, 어른도 한 뼘씩 성장하는 거잖아.
평소 알고 지내는 시인이 낸 시집이니, 당연히 소비자로 사야한다는 당위성으로 동네서점(그것도 제법 큰 전국단위의 대형서점)에 가서 이 시집을 검색하니 없단다. 신간 시집도 바로 안 꽂아두는 무신경에 속으로 욕을 하다가 정말 지역서점인 계룡문고 가서 다시 시집을 찾았더니, 달랑 한 권 있다. 좋은 책은 두 권 사서 선물하는 것이다, 라고 곧잘 이야기하던 내 아들 말이 생각나서 두 권 살려고 했더만, 없단다. 젠장.
결국은 사랑 받고 큰 아이가 뭐든 잘 하더라
스무 살이 되면 아이는 부모 교육학의 임상결과치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은 그 아이가 어떤 대학을 갔고, 그 아이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것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소위 공부 잘 하고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 공부만 잘 하는 아이, 관계도 박살난 아이, 이렇게 세분화되더라. 공부 잘 하고 부모와 관계도 좋다면 그것은 이 땅의 부모가 다 바라는 최고의 기대이겠지만 그게 그리 쉽나. 공부만 잘 하면 그건 성공한 건가, 최악은 공부도 관계도 다 깨진 채 스무 살을 맞이하는 아이를 보는 것이다. 그 깨진 관계안에서 아이는 사랑 받지 못 했다고 스스로 피해의식에 쩔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거든. 그게 슬픈거잖아. 이 땅의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다만 부모가 서툴러 그 표현을 제대로 못 해 준 것 뿐이지. 결국은 사랑 받고 큰 아이가 뭐든 잘 하더라.
짧은 시집에 나는 촌스럽게 길게도 주절주절 쓴다. 그만큼 오는 느낌들이 강력하다는 이야기이다. 시집으로 기록되어진 현우(시인의 아들)의 학창시절 모습들에서 시인의 글빨보다 그 안에 담겨진 아빠 사랑을 더많이 읽었다. 그래서 눈부시게 그들 부자들이 예뻐 보인다. 이런 축복이 어디 있을까.
<나는 고딩 아빠다> 그 시집 한 권 사서, 익어가는 봄날에 뒹굴뒹굴 읽어보자. 아이가 어리면 시인이 아이 어릴 때 자주 해 주었다는 쇼파 비행기 놀이 한 번 해 보면 어떨까. 그 비행기 타고 달나라도 가고, 먼 미국도 가 보고, 가까운 일본도 가 보는 거... 그게 부모 역할이다 싶다. 시집 한 권 사세요.
<축구공은 무죄>
학교에 한번 다녀가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은 뒤 찾은 곳
은 온 동네 인삼 가게다 선물용으로 좋다는 제품의 가격이 너
무 비싸 바타500 음료수 두 박스를 들고 학교에 가다가 다
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님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면 땀이 많이 나서 자제를
시키거든요 땀 냄새가 많이 나면 수업 분위기에 방해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교무실에 와서 공을 달라고 큰소리를
쳐서 선생님들이 놀랐어요
내가 공을 멀리 찰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유리창
을 깨고 싶었다 방범 카메라 없는 곳에서 돌을 던져 유
리창을 깨고 도망칠까 궁리를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고딩이 냉장고에서 비타500을 꺼냈다
맛있다며 한 병 더 마셨다
-정덕제, 나는 고딩 아빠다, 창비교육,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