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쟁이들이 있어, 버티다

그래서 읽는다

by 동메달톡

내 주변에 예술적 끼쟁이들이 있다면 단연 글쟁이들이 제일 많다. 아직도 시나리오 쓴다고 영화와 운명적 조우를 꿈꾸는 친구가 있고, 아직도 시나 소설로 등단하겠다고 원고지 같은 아래한글에 코 묻고 있는 친구도 있다.


또한 이름만 대면 금방 고개 끄덕이는 문단의 평론가도 있고, 시나 수필 혹은 소설로 등단한 작가도 있고, 그 글밥으로 출판사를 작게나마 운영하는 후배도 있고, 연극기획이나 연출하는 후배도 있고, 책만 전문으로 파는 제법 이름 있는 책쟁이 친구도 있다.


어릴 적 부터, 책과 도서관에 그리고 문학에 파묻혀 있는 선배, 후배, 친구들과 각설이 같은 논쟁과 입담과 글담으로 전쟁터 같은 으르렁거림을 습관적으로 보며 자랐다. 그 지랄(?)맞은 우리들의 끼를 보면서 나는 게임도 안 되는 재능적끼에 이미 손을 들었던 터라 글쟁이 꿈도 못 꾸었고. 특히 문학적 글은 손도 대지 말자라고, 다짐다짐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비문학적 글쓰기에 조금 덜 버거워 하는 것으로 위안를 삼고, 읽으면 아 이것은 느낌 있네, 저것은 구성은 커녕 글이 아니네, 정도 식별할 약간의 눈을 준 것을 감사하자며 그렇게 세월을 지나왔다.


그런 감사함이 덜컥 브레이크가 걸린 게, 소위 대학원(나이 들어 갔으니)들어가서 였다. 나더러 글은 연습하면 느는 것이다, 라고 막 설명을 하는 그 나이 어린 교수를 보는데 솔직히 꼭지가 확 도는 것이었다. 내가 쓴 글 한 편도 안 봤고, 안 읽은 상태에서 나한테 글연습을 하라고 교수적 갑질(??? 그 때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을 하는데, 그거 수용 못 해서 며칠을 끙끙거렸고. 나중에 보니 죄다 보고서 수준의 글이더라. 그거 우리는 글로 인정도 안 하거든(교만이 하늘을 찔러요.ㅋㅋ).


암튼 그런 내 안의 교만의 작렬을 몸소 느끼고는 남의 글에 대한 독자적 지적질은 안 하기로 했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짜증나서. 나중에 보니 보고서형 글이 다른 틀을 가지고 있기는 하더라만.


요즘 책을 또 미친듯이 읽으면서, 그래도 가장 큰 쉼터는 역시나 읽기이고, 쓰기임에 다시 감사한다. 얼마나 다행이냐. 술 안 먹고, 유흥 못 하는 이 독고다이가 읽는 것이라도 좋아하니, 신에게 감사해야 하고. 또 어릴 때 치열하게 글자 가지고 논쟁하고, 토론했던 그 선배, 후배, 친구들이 있어 뚝심을 길러주었으니, 그거 내 복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내 복이다, 생각하니 다 감사해진다.


그래도 머리는 쬐금 아프네.


읽고 쓰는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 억척같은 소망이 또 올라와서 허걱허걱한다. 끙


커피나 한 잔 하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점에서 읽는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