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허영 그리고,
똑딱이는 그 여백에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

by 동메달톡

“커피 만들어 마시나요?”
“네, 대충 만들어 마셔요. 그런데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는 말은 처음 들었어요. 통상 내려 마신다고 하는데 말이죠.”
“그게 그거죠. 자기 취향대로 만들어 마신다는 말이 더 좋던대요. 기가 막히게 맛있는 커피집이 있는데, 커피 좋아하면 거기 가 볼래요?”
“기가 안 막히면 맛있는 커피 만들어주세요”

그렇게 커피 동행은 시작되었다 말이지. 얼마나 기가 막히는 커피인지는 몰라도 가장 큰 수확은 그 집주인하고 커피 이야기를 좀 더 깊게 했다는 것. 커피 한 잔, 더 드실 수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기꺼이 더 마실 수 있다는 호기를 부리며, 커피 원산지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자세히 들었고, 그리고 실제 농장 가서 농부와 신뢰를 쌓고, 직접 커피를 공수해 온다는 이야기까지, 참 풍성하게 커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이지. 그리고 일반의 깔때기 같은 드리퍼에 내리는 커피가 아닌, 주전자 통째로 우려내리는 방식, 일명 소덴주전자로 커피를 내려주는 게 아닌, ‘우려 주는’ 커피였다 말이지. 좀 더 밀도감 있고, 좀 더 은근한 매력을 주었던 그 소덴주전자의 낯설듯 친근한 그 무엇은 뭔지 참 아련하여, 오래도록 나를 덜컥 덜컥 잡더구먼.


소덴주전자, 커피의 다른 맛

그래, 커피는 그렇게 서걱서걱 낯설게, 예민하게, 따뜻하게 내 주변에서 서성인다 말이지. 그 커피가 뭐라고, 여행이나 출장 가면, 미친년 보따리 챙기듯이 한 짐을 싸는지 모르겠다. 커피가루에, 각종 드립 기구들, 깔때기며, 여과지며, 심지어는 커피 주전자까지. 한 짐이다. 그 짐만 빠져도 내 가방은 한결 가볍겠지. 그럼에도 도무지 커피 도구를 양보할 수 없어서 바리바리 챙겨서 간다. 그러고는 대형 전세 버스 통로에서 커피를 내리고, 산길 오솔길 벤치에서, 길바닥 모퉁이에서, 속수무책으로 커피를 내린다. 그러고는 “커피 드실래요?” 하면서 주변에, 은근슬쩍 강권한다. 내가 이렇게 커피를 내렸으니 여러분들이 마셔줘야 해, 하는 암묵적인 힘을 실어서 내 커피에 환호하게 만든다. 그 길에서 마시는 커피, 당연히 봉지 커피보다 맛있겠지. 그 환호를 은근슬쩍 즐기며, 나름의 인정 지수를 즐기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 안에서 끄응하는 신음을 하기도 한다. 이런 속물 같으니라고. 끙!



커피 관련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커피와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은 적어도 커피에는 허영끼 충만한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나더라. 그래서 이래저래 기억을 더듬고, 추억을 더듬어 봐도 역시, 커피는 허영덩어리더라. 그 허영끼를 충족하기 위하여, 돈과 시간과 공간적 순례를 많이 하기는 했다마는, 내 안에서 뭉글뭉글 혹은 둥글둥글 담겨 있는 커피 미학은 한 마디로, 허영이라는 틀과 내 안의 여백이라는 것, 두 가지가 공존한다. 허영이다 싶지만, 여백이 주는 매력이 있어 나는 커피를 즐긴다, 하면 이 역시 그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장난이다 싶지만, 커피, 나에게는 참 거시기하다.


길거리에서 드립을 하다

병 속에 들어있는 알갱이 커피에서 시작하여, 봉지 커피로 진화하여, 프라마와 설탕이 없는 아메리카노에서 다시 드립 커피와 또다시 허영끼 작렬한 에스프레소 한 잔까지, 내 커피 역사는 가히 웃기는 짜장면이다 말이지. 학교 때 마신 그 달달한 커피는 시험 기간 잠 깨는 마약 같은 성질로 들컥들컥 마셨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언저리 나이에서는 데이트 수단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설탕 둘, 프리마 둘, 뭐 이런 식으로 서로의 취향을 묻는 그 소통적 도구로 커피는 자리매김했다 말이지. 그 취향 안에서 교집합을 찾고, 그 교집합이 마치 대단한 무엇 인양 서로 환호하기도 했음에.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지요 한다 말이지.


트레킹 벤치에서 커피를 준비하다

드립 커피를 익힐 때는 또 어떠냐 하면, 그건 더 웃기는 짬뽕, 누군가 내 앞에서 커피 원산지별로 다른 맛의 차이를 작렬하게 이야기하니, 그 난 척이 눈꼴사나워 나도 그 이야기 축에 끼어 보겠다고, 그 길로 내 혀를 가히 고문시키며 벌컥벌컥 마신 커피의 순례 생각하면, 커피는 나에게 완전 허영끼, 라는 것에 정말 동의하고 공감해야 한다 말이다. 이런 철딱서니 하고는.

그럼에도 커피가 여백이라는 함은 이런 속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 그거 소득이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게 아니라, 만들어 마신다는 지인의 이야기나 소덴주전자로 커피를 우려 주었던 그 커피집주인이나, 어린 시절 시험기간 동안, 잠 깨는 약처럼 마셨던 커피나, 설렘 안고 만나는 낯선 만남에서 몸 베베 꼬며 마시는 커피나, 악으로 깡으로 마셨던 에쏘 한 잔이나 드립 한 잔에서, 나는 사람을 만났고, 나를 만났음에 내 커피 허영에 그저 건배할 따름이다. 좀 허영스러우면 어때. 그 커피를 만나며, 사람을 알았고, 사랑을 알았고, 관계 맺음을 알았는데. 좀 부산스러운 커피 마시기면 어때. 그러면서 철 들어가는 것이고, 그러면서 내 허영끼에 작은 면죄부라도 하나 주는 것이지.

에쏘의 매력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길 위에서 커피를 만나면서, 더 많이 관찰하고, 더 많이 느끼는 내 안의 촉에 그저 웃고, 울며, 그렇게 사랑하며 서성이는 거지. 그러면서 커피 한 잔, 나눠 마시는 것이지. 그게 허영이라면 기꺼이 누려야지. 그치? 그렇지? 그러면서 커피와 사람, 그리고 온전히 사람에 대한 글을 마구마구 써 보는 것이지.

눈이 올 것 같은 날, 우리들 일상에 건배하며, 끄적끄적, 주절주절 글을 쓰다.

커피는 여백이다

월간토마토 2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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