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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플레이크 Nov 26. 2020

이 시대의 여행법

불안하고 편안한. 

지난 여름, 5주 반을 서울에 있다 왔다올해 2월에 가려던 것을 못 가고 미루고 미루다 다녀왔다마일리지로 가려던 걸 무척 싼 티켓이 있어 그냥 샀다코로나 시대에 비행기 값이 몇 배는 더 비싸다는 말이 돌았지만실제론 싼 티켓도 많았다내가 산 항공 티켓은 560유로였다. (보통 때라면 800유로 아래으로는 구경도 못할 가격이다.베를린에서 도하도하에서 서울로 오는 여정은

미안한 말이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편했다


일단 공항에 사람이 없어 기다리는 줄이 없었다. 비행기 안에도 사람이 없었다한 줄에 한 명씩 앉았다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선 누워서 왔다기내식은 금방 나왔고기내 화장실 앞에도 줄 선 사람이 없었다입국심사대에도출국심사대에도 사람이 없으니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서있지 않아도 됐다모두가 여행하지 못하는 시대에 여행은아이러니하게도 쉽고 편했다

 

바뀐 점이라면 비행 내내 마스크를 쓴다는 점항공사에선 투명한 페이스 커버까지 나눠줬다마스크를 쓰고 그 위에 또 투명한 플라스틱 커버를 머리에 둘렀다장시간 앉아있는 비행기 안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소독을 철저히 하는 공항이나 비행기 내에서 감염률이 오히려 낫다는 사실에 애써 위안을 삼았다서울에서는 2주 격리를 했다그게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서울에서 일정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날

비행기 안에서 의료진들이 입는 방호복 같은 옷을 입은 승객을 봤다그녀는 발 끝에서 머리 끝까지 모두 방호복으로 덮고 자리에 앉았다화장실은 어떻게 갈까, 불편해 보였지만그녀는 한번도 벗지 않았다두려움이 새하얀 방호복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그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누가 상쇄시킬 수 있을까.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안심시킬 수 있겠나... 



코로나19 가 터진 이후의 여행은 확실히 낯선 것이었다공항 카운터는 모두 비어있고경유지에서도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세기말 시대에 텅 빈 거리를 거대한 스크린이 점령하고 돌아가는 것처럼도하의 공항에서도 거대한 영상만 공허하게 돌아갔다. 2020년의 여행은 불안하고 편안한 것이 공존하는 이상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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