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동민 May 21. 2020

어류겐과 아따따뚜겐.

허락보다,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빠르다.

'Have Fun' 그리고 'Do the right thing'은 언젠가부터 내 삶의 기조가 되었다. '즐기고, 옳은 일을 하자'라는 우리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영어로 유지하고 있음은, 이 기조를 지어준 이가 한국어보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편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가치를 계승하고자 할 때 나는 그의 언어를 기억하고 싶다. 마치 번역본의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 '이거 원문은 어떻게 쓰여있는 것일까'하며 찾아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입 밖으로 뱉어지는 말도, 글로 쓰이는 이야기도 한번 나오게 되면 어딘가에는 '글자 그대로' 꼭 남게 된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렇게 글이 남게 된다는 것은 가끔 스스로를 당황스럽게 하기도,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나 규칙적으로 일정량의 글을 '찍어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이 '찍어낸다'라는 표현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몇 달 동안 적어도 평일에는 하나 정도씩의 이야기를 짜내고 있다 보면 '찍어낸다'라는 표현 외에 달리 어울리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글을 찍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찍어내는 만큼 스스로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적어 남기는 이야기들을 잘 잊어버리고 만다.


이는, 내가 스스로 적는 이야기들을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젠가 내 글을 읽은 타인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졌다. 그럴 때면 나는 노트북이나 게임기의 로딩처럼 잠시 멈춰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애써 떠올려낸다 한들, 기기들의 로딩을 절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 '분명 내가 한 말이긴 한데, 어떤 글에서 어떤 흐름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도통 기억해 내지 못한다고 할까. 이것은 다소 슬픈 일이긴 하지만 그래서인지 새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그러니까 '글에서는 절대 거짓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라는 것이다.

아내는 바닥에 누워 평화롭게 '동물의 숲'을 하고 나는 소파에 누워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던 어느 평화로운 주말 저녁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왜 아내의 닌텐도 조이스틱이 고장 났을까. 아내는 새로운 조이스틱을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싸지 않은 조이스틱에 약간의 불평을 할 때 즈음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냥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나는 무심결에 한마디를 던지고 만다. "플레이스테이션 조이스틱도 말이지, 체코에서 사는 게 되려 한국보다 비싸더라고"라고 말이다. '아차차'나는 속으로 되내었지만 이미 말했듯 밖으로 나온 말은 주어 담기가 어렵다.


"아니 체코에서도 플레이스테이션 조이스틱을 샀었단 말이야?", "언제 샀는데?", "왜 말하지 않았어?", "거기 가서 직접 샀다고!?" 그녀는 마치 '쇼미 더 머니'에 출연한 래퍼처럼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쏟아내기 시작한다. 게임으로 말하자면 '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같은 대전 게임에서 약한 발차기나 주먹을 맞으면, 뒤이어 나오는 후속타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들 이것을 지칭해 '콤보 공격'이라고 부른다. 콤보는 유져의 숙련도에 따라 보통 3 연타에서 심한 경우 3-40 연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나는 다소의 억울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과 '굳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이런 항변을 해본다한들 이미 모든 것은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콤보 공격이 끝나는 것을 결정하는 사람은 공격자이지, 수비자가 아니다.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빠르다'라고 했던가. 겨우 일주일에 글 몇 편을 적으며 사실과 거짓을 운운하기에는,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니 거짓을 말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가능한 대로 사실을 털어놓고 사는 편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사소하거나, 진지한 프라하의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