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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un 02. 2020

꼰대를 벗어나기는 틀린 것 같아.

차라리 그런 책은 읽지를 말던지...

인간 대표 이세돌이 알파고를 상대로 드디어 1승을 거두었다! '신의 한 수'라 불리기까지 한 그의 78수는 보기 좋게 알파고를 당황시켰고 그는 결국 알파고를 상대로 이긴 최초, 최후의 1인이 된 것이다. 이것 참 '인간 대표'라는 말도 너무나 멋진데 최초/최후/유일의 인간이라니! 이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수식어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일요일 소파에 누워 늘어지게 잠만 자는 인간 대표는 필요하지 않을 텐데, 나는 대체 어느 분야에서 인간대표가 될 수 있으려나...)그런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바둑계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알파고의 진화에 따라(이세돌과의 대결 후 벌써 두 단계는 진화했다지!?) 이제는 어느 바둑 기사도 알파고를 이기지 못하게 되었고, 더 이상 기사들은 전통적인 기보를 연구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바둑 기사들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연습 상대는 알파고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본디 무엇인가에 대해 터득해 나갈 때 가장 저명한 사람으로부터 지도 편달받고자 함이 당연한데, 요즘 세상 알파고가 가장 바둑을 잘 두는 것이 사실이니 당연히 모두들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는 바둑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 스승의 비기를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소림사에 입문해 그동안 열심히 우물만 길어오던 소년이 이제 양동이 따위는 던지고 하산할 수 있고, 셰프의 메인 요리를 꿈꾸며 설거지만 도맡았던 청년도 앞치마를 집어던진 채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라떼는 말이야..'와도 같은 이 야이를 억지로 참고 듣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스승의 비위를 맞추는 시간에 방 안에서 편히 연구된 레시피를 공부하고, 더없이 친절한 UFC 선수의 유튜브를 보며 발차기를 배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어쩐지 나는 이런 편리함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노래도 사람이 좋아하는 멜로디를 분석해 만들어지고, 그림 역시 요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색의 조화를 기계가 찾아주는 이 효율적인 세상이 별로다. 마치 축구게임을 한다 해도 더 이상 친구와 낄낄거리며 즐겁게 게임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닌, 단지 어디 각도에서 '슛 버튼'을 누르면 골이 들어가는 방법만을 연구하는 세상이 다 된 것 같아 아쉽다. 콘텐츠보다 조회수가 중요하고, 속내 음보다 자극이 중요해진 시대가 단조롭다.


"보이지도 않는 곳인데, 그곳까지 왜 그렇게 열심히 그리고 있나요?, 대강해도 아무도 몰라요"라는 참견에 "내가 알잖아, 인마"라고 답하던 미켈란젤로의 고지식함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대가들의 위대함에 감탄하지만, 결국 당연히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고야 마는 세태가 아쉽다. 대가는 대가의 삶을 살았던 것이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라고 단정 짓는 순간 더 이상 위대함은 만들어질 수 없다. 아니, 그럴 생각이라면 애초에 위대함에 대한 책들 따위는 읽지를 말던지...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글을 돌아보건대, 나는 꼰대를 벗어나기 틀린 것 같아.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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